겨울의 청양은 춥다. 나는 주말에 청양에 가면 발을 동동거린다. 지대가 높고 산이 깊어 대전보다 춥기 때문이다.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은 6,70년대 공비가 숨어들기도 해서 뉴스에 나올만큼 유명세를 치렀다. 그 칠갑산 아래 장곡사라는 절이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뜸해 고즈넉한 분위기에 매료돼 자주 찾곤 했다. 지금은 장승 축제도 열려 축제 철엔 시끌벅적해진다. 그래도 워낙 마을이 깊은 산 속에 있어 평소엔 인적이 드물다. 여기에 우리 가족의 단골 식당이 있다. 닭 백숙이 주 메뉴인 '황소집'이 그 곳이다. 소고기가 아닌 닭고기만 파는 곳인데 왜 상호가 황소집일까 궁금해서 주인장에게 물어봤다. "예전에 여기가 소를 키우던 자리여서 황소집이라 지었지요."
우리 가족은 벚꽃이 피면 닭 백숙을 먹으러 으레 이 곳에 들른다. 처음 한동안은 엄나무 백숙만 먹었다. 내가 알레르기가 있어 옻오를까봐 옻닭은 감히 시도를 못했다. 그러다 '한번 저질러봐?' 심정으로 옻닭을 먹기로 했다. 식당 주인이 건넨 알약에 의지해서 말이다. 항히스타민제였다. 그래도 불안해 연지곤지 찍고 원삼 족두리 쓴 신부가 초례청에서 대추를 받아 먹듯 조심스럽게 먹었다. 복요리를 먹는 기분이 이럴까. 보툴리누스라는 치명적인 독이 있는 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스릴을 즐기며 먹는 요리다.
이순신은 진도 울돌목에서 부하들에게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복요리는 죽고자 하고 먹으면 진짜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요리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되뇌이며 허세 떨었다간 요단강 건너기 십상이다. 뭐 옻은 기껏해야 두드러기 정도니 생명엔 지장 없지만 겁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에라 모르겠다, '방패' 없이 용감무쌍하게 덤볐다. 모 아니면 도라는 결의로.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잎이 무성한 벚나무 터널을 굽이굽이 지나 장곡리에 도착했다. 드디어 옻닭이 나왔다. 뜨끈한 국물을 연신 떠먹으며 다부진 닭다리 하나를 뜯기 시작했다. 토종닭이라 근육질의 고기를 씹는 느낌이 살아있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고, 잘도 먹네. 맛있냐?"고 연신 물었다.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어르신 유치원)에서 저녁까지 드시고 오는지라 가만히 앉아서 폭풍같이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건너편에서 막 밥을 먹고 난 어르신도 내가 먹는 모습을 무안할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쩝쩝. 다음은 찰밥. 옻닭 육수로 지은 쫀득한 찰밥과 함께 먹는 고추 장아찌는 찰떡궁합이다. 사실 난 이 맛 때문에 여름이 오면 옻닭 먹으러 가자고 식구들에게 조른다. 먹고 남은 찰밥과 고추를 싸와서 다음날 아침에 먹으면 더 맛있다. 올챙이처럼 볼록한 배를 두드리며 식당 밖으로 나오자 청아한 개구리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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