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권역별 국립대학 대통합은 교육부가 2004년 '대학 구조개혁과 자율화 방안'을 발표한 직후부터 논의되었다. 대교협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대학교육'에 실린 경상대 백정국 교수의 글은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을 권역별 국립대 통합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부산대, 부경대, 해양대, 부산교대, 밀양대를 통합하고, 경남은 경상대, 창원대, 진주교대, 진주산업대를 묶는 방식으로 전국 10개 권역별 국립대학 통합을 제안한 것이다. 백 교수는 통합의 가장 큰 효과로 한국 고등교육의 가장 큰 위협요인인 우수학생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다시 등장하고 있는 '1도 1국립대'개념은 위의 18년 전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작년부터 '강원도 1도 1국립대학' 협약을 기반으로 캠퍼스별 특성화와 지역 산업 및 문화 활성화를 위한 협력체계 구축을 내걸고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09년에 교과부가 같은 권역에 있는 복수의 국립대가 하나의 의사결정체제를 구성해 유사·중복 영역을 통폐합하고 캠퍼스별 특성화를 추진한다는 목표 아래 대학들의 신청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이에 응한 대학이 하나도 없었나 보다.
작년에 나온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대학 구조개혁 관련하여 공감과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책이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초·중등교육 황폐화를 불러온 학벌체제 타파와 입시경쟁 완화가 자리하고 있지만, 왜 여기서 하필 서울대여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그 역시 의도와는 다르게 또 다른 서열화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혁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서열 해소 차원의 대학 평준화가 아니라 권역별 대학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대학별 특성화와 다양화를 지향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대학통합을 얘기하며 선진사례로 평가하는 프랑스 파리 대학도 1969년 극심했던 서열화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의도였지만, 대학별 특성화는 여전하면서도 공고화됐다. Paris Ⅰ대학은 역사, Paris Ⅱ대학은 법학, Paris Ⅲ대학은 언어학, Paris Ⅳ대학은 철학, Paris Ⅴ대학은 의학, Paris Ⅵ대학은 과학, Paris Ⅶ대학은 사회과학, Paris Ⅷ대학은 예술, Paris Ⅸ대학은 경제학 등을 중심으로 특성화되어 있다. 물론 각 대학이 특성화 학과만을 운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면서도 유독 그 분야가 상대적으로 더 유명하며, 그 중심에는 경쟁력을 갖춘 교수 집단이 명성을 유지해나간다. 학풍과 지도교수를 따라 지원하는 모습은, 학교와 학과 이름을 우선시하는 우리와 사뭇 대조되는 대목이다.
학령인구 감소로부터 출발한 대학의 위기는 통합추진으로 경쟁력 있는 규모를 갖추어 대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명목상 합치기만 해서는 경쟁력이 올라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통합은 발전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통합은 구성원의 동의와 설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역별 국립대 통합을 전제로 우선 로드맵에 기반을 두어 각 대학의 특성화를 공고히 하면서 차차 화학적 통합을 모색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그러면 흡수통합 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지역 사립대와의 상생모델을 더할 수 있다. 이미 특성화하여 경쟁력 있는 사립대 학과들이 학부과정을 담당하고, 대학원 교육을 국립대에서 연계하는 방식이다. 물론, 사립대 교수가 연합대학원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일들을 추진하는 데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교육은 여전히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통 큰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무기로 지나친 간섭과 정부 주도 추진을 경계해야 한다. 분명 머지않은 장래에 대학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때가 닥쳐 서두르기보다는 지금부터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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