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영훈이와 정인이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영훈이와 정인이

  • 승인 2022-05-11 13:34
  • 신문게재 2022-05-12 18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아동
게티이미지 제공
#6살 영훈이는 아빠와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빠와 새엄마는 영훈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때리거나 밥을 굶기기도 하고, 쇠젓가락으로 발등을 찍고 다리미로 등이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두 살 터울의 누나는 이들 부모에게 학대당하다가 사망(사인은 '아사')해 마당에 암매장됐다. 누나의 시신을 부검했을 때 위에는 소량의 위액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영훈이도 발견 당시 2주 가량을 굶어 위액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영양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또한 몸 곳곳에는 상습적인 학대를 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1998년에 발생한 이 '영훈이 남매 사건'은 TV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아동학대'의 실상을 알리고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평소 건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인생 8개월차 아기였던 정인이는 그동안 키워준 위탁모를 떠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새로운 가족과 행복한 만남을 꿈꿨을 아이는 수개월에 걸친 양부모의 심각한 학대 끝에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건조사에서 드러난 아이의 사인과 학대당한 흔적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나무위키' 자료에 따르면 아이의 직접적 사인이 된 장기 파열은 장간막 출혈과 소장·대장 파열 및 췌장 절단인데, 이러한 손상들은 모두 압사나 교통사고와 같은 급격하고 강력한 외부 충격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췌장이 절단되려면 배가 척추에 닿을 정도로 납작 눌려야 가능할 정도라고…. CT영상으로 본 아이의 뱃속 또한 출혈 때문에 복강 전체가 피로 가득했고, 터진 장에서 빠져나온 공기가 복근 아래에 차 있었다. 또한 이미 장기 일부에서 적어도 1주일 이전에 충격을 받아 장기가 손상되었다가 회복된 흔적과 함께 양팔과 가슴 곳곳에 골절 유합 흔적까지 있었다. 천진난만했던 한 아이가 이유없는 학대로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사망한 이 사건으로, 당시 관할 서장이 경질되고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을 정도로 전 국민을 분노에 들끓게 했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2011년에는 6058건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3만905건으로 해마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가해자는 부모(친부모 및 계부모 모두 해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보육시설 등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특성상 제3자의 눈에 띌 정도면 이미 상태가 엄청나게 심각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학대는 아직 어린 나이의 아동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최악의 범죄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오랫동안 후유증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은 보호자가 아동을 가정에서 성장시기에 맞춰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하고,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되며, 아동의 권익과 안전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 정부는 더 나아가 아동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규정하는 아동기본법(가칭) 제정을 내년까지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아동이 일상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도록 하는 '놀 권리'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의료권·발달권·생존권·참여권·환경권 등 아동이 누려야 하는 구체적인 권리들을 법으로 규정하고, 보호자가 아동을 존중해야 할 책무도 함께 담겨질 전망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도 겪어봤듯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는 필수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더 이상은 '내가 낳고 키운 내 건데, 어떻게 취급하든 내 권리이고 내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소유물이나 장난감처럼 여기거나, 훈육을 빌미로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이 돼선 안된다. 나 또한 부모로서 살아온 지난 11년간 충분한 보호와 이해·공감 속에서 존중과 사랑을 쏟으며 아이를 양육해왔는지 곰곰이 돌이켜보고 반성해 본다.

현옥란 편집부 부장

현옥란-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