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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묘장(養苗場)에서 일한 지 석 달째다. 처음엔 일머리를 몰라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식당 개도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이제는 모르는 건 빼고 다 아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양묘장은 식물의 씨앗이나 모종, 묘목 따위를 심어서 기르는 곳이다. 여기서 자라는 식물과 나무, 꽃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인생 궤적을 닮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처음엔 땅(혹은 화분)에 씨앗을 뿌린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땅을 뚫고 싹을 틔운다. 마치 갓난아기를 보는 느낌이다. 아울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화두와 호기심이 발동한다. 일정 기간 성숙하면 분갈이한다.
온도와 환경까지 최적화된 양묘장에서의 꽃은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그러나 모든 꽃은 만개했을 때가 가장 고울 뿐, 이후로부터는 실망이 중첩(重疊)한다. 예견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닥치기 때문이다.
먼저, 그토록 도도했던 목련이 허무하게 낙화하면서 초라한 모습을 보인다. 뒤를 이은 벚꽃은 상춘객들의 마음까지 강탈했지만 역시 봄비에 죄 추락하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튤립 또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다.
길어봤자 열흘 후면 내년을 기약하며 우리의 시선에서도 사라진다. 5월에 합당한 꽃은 단연 카네이션이다. 주로 어버이날에 부모님의 가슴에 다는 풍습이 있는 이 꽃은 관상용으로도 으뜸이다.
하지만 이 녀석도 '화무십일홍'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알렉산더(Alexander)는 마케도니아의 왕(BC 356~BC 323)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죽음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명의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허둥대는 측근들과는 다르게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다. 어느 날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힘겹게 입을 열어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내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그것은 천하를 차지했던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고작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다수당'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곤 자당 의원을 위장 탈당까지 시키면서 국회선진화법(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제정된 국회법 개정안) 규정까지 잠탈(潛脫)한 여당과 일부 위성 정당 의원들의 횡포에 국민은 분개했다.
선거 때는 목청이 떨어져라 인사를 하며 민의의 충실한 전달자가 되겠다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국회의원이 되자 그야말로 막가파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에는 리큐즈(recuse, 기피)라는 적법 절차의 기본조차 무시했다.
'검수완박'이 가져올 폐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들 몫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권력은 십 년을 못 가고 붉게 활짝 핀 꽃은 열흘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배울 만치 배웠다는 국회의원들이 모를 리 없다. 대단했던 권력도 결국엔 '화무십일홍'이라는 플랫폼과 랑데부하기 마련이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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