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 |
"저는 찬성합니다. 인구 4천만의 캘리포니아에도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10개 있습니다. 인구 5천만인 한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10개 있어야 합니다. 대학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창조권력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입시교육은 진짜 공부가 아닙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 있었던 지방대 총장들도 놀랐다. 충남대를 비롯한 지방대를 똑같이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키워야 한다고 서울대 총장이 말하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역시 천재!' 독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세정 총장은 어릴 때부터 천재로 소문난 분이다. 오 총장은 나의 책을 자세히 읽고 왔고 나의 또 다른 책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도 읽고 왔다. 그렇게 바쁜 서울대 총장의 '철두철미한 공부'에 나는 또 한번 매우 놀랐다.
사실 나의 책은 열심히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책이다. 대학의 역사와 구조, 대학 체제의 국제비교, 창조권력으로서의 대학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대학 90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은 1810년 훔볼트주의에 의해 독일대학들이 창조권력인 연구중심대학이 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들은 성직자 양성이나 상류계층의 교양 교육을 담당하는 지위권력(학벌)으로 기능했다. 독일대학들은 화학, 철강, 전기 분야를 선도하며 19세기 2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당시 독일은 39개의 소국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국가마다 탁월한 대학을 세웠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각 도에 각자의 서울대를 세웠다. 그런 소국들이 1870년 통일이 되었고 독일의 각 주는 자신들의 탁월한 대학들을 그대로 유지했다. 따라서 독일은 평준화되었지만 탁월한 대학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노벨상을 110여명 배출했고 최근 mRNA 백신도 독일 과학자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오세정 총장은 스탠퍼드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는 원래 미국의 지방대였다.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들보다 250년 늦게 세워졌기 때문에 미 전역의 명문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명성이 높지 않았다. 스탠퍼드가 유명해진 이유는 20세기 중반 반도체 혁명과 IT혁명, 즉 3차 산업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곧 학벌을 주는 지위권력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산업, 경제를 만드는 창조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캘리포니아에는 스탠퍼드뿐만 아니라 버클리, 칼텍, UCLA, UC 샌디에고와 같은 세계적인 대학들이 존재한다. 이들 모두 애초에는 지방대였다. 인텔이라는 반도체 제국을 세운 고든 무어는 버클리 학사, 칼텍 박사였다. 위대한 정치인, 기업인, 총장,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중부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지만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만들어서 현재 전세계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학체제를 가지고 있다. 스탠퍼드 박사 출신인 오세정 총장은 누구보다 이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단박에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찬성한 것이다.
지금 충청도에서는 내 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고 있다. 좋은 일이다. 카프카가 '책은 도끼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내 책이 서울/지방, 서울대/지방대의 이분법에 금을 낸 도끼가 된 것이다. 나는 책에서 지방대가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되기 위해서 지방대들 사이의 통합과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6년 서울대는 경성제국대학과 수도권의 7개 전문학교가 통합해서 탄생했다. 1957년 연희대와 세브란스의대가 통합해서 연세대가 탄생했다. 창조권력인 연구중심대학은 규모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이를 위해 대학들끼리 통합을 통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대학 발전을 위해 통합을 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요즘은 대학교육의 질 향상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대학 통합이 더욱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공교롭게 내 책이 출간된 전후에 충남대와 한밭대가 통합 논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충남대와 한밭대의 통합은 구성원들 사이의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거쳐서 결정되어야 한다. 충남대 본부는 지방소멸을 막고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해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충남대 학생들이 반대하고 나서서 논쟁이 일고 있다. 충남대 학생들의 반대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충남대 학벌과 한밭대 학벌은 다른 것이며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전형적인 '구별짓기'이자 학벌주의다. 한국인들의 학벌 의식을 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학벌 의식이 오랫동안 형성되어서 일종의 무의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 전국 사회학과 교수들의 학벌을 전수조사했다. 서울 소재의 사회학과 교수들 중에서 지방대 출신은 단 1명도 없었다. 사회학과 교수집단은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다. 이런 한국 최고의 진보집단조차도 지방대 출신 단 1명을 교수로 임용하지 않는 학벌주의에 물들어 있는데 충남대 학생들의 학벌주의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학벌체제를 유지하고 강요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충남대 학생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왜 서울대 총장은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의 대학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했을까?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를 철두철미하게 공부해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누구의 의견이나 주장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머리로 그 이유를 끝까지 파고 들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울대 학벌과 충남대 학벌은 다르다. 충남대 학벌과 한밭대 학벌이 다른 것처럼. 대학을 학벌을 주는 지위권력으로만 본다면 서울대 총장은 지방대가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은 창조권력이며 충남대 학생이건, 한밭대 학생이건, 서울대 학생이건 간에 그들의 출신 대학을 뛰어넘어 창조적 인간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장소다. 이것이 바로 오세정 총장이 지방대도 서울대 수준의 창조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오 총장은 학벌 때문에 입시지옥을 겪는 '학생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전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들을 세워야 한다고도 말했다. 오 총장의 학생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에 또 한번 놀랐다. 나는 대한민국의 서울대 총장이 무척 자랑스럽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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