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알 수 없어요,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알 수 없어요,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4-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랑, 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알다가도 모를 사랑, 믿다가도 속는 사랑, 오목조목 알뜰 사랑, 왈칵달칵 싸움 사랑, 무월삼경(無月三更) 깊은 사랑, 공산야월(空山夜月) 달 밝은 데 이별한 임 그린 사랑, 이내간장 다 녹이고 지긋지긋이 애태운 사랑, 남의 정만 뺏어가고 줄줄 모르는 얄민 사랑, 이사랑 저사랑 다 버리고 아무도 몰래 호젓이 만나 소근 소근 은근 사랑. 얼시구 좋다, 내 사랑이지, 사랑, 사랑, 참 사랑아.

<창부타령> 가사이다. 이성간의 사랑을 이보다 더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있을까 싶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차마 어이 알랴. 한 여자, 한 사람도 이해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물며 사랑을 어찌 알랴. 다만, 여성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예전에 주장한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였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을 잃으면 아들을 좇으라는 것이다. 지금 보자니, 남자는 어려서 어머니 사랑으로 성장하고, 결혼하면 아내의 사랑으로 살고, 혼자가 되면 딸내미 사랑으로 살아간다. 삼수지애(三受之愛)이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처럼, 함께 할수록 모르는 것이 인생사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담은 그림 하나 감상해보자. 신윤복(蕙園 申潤福,
신윤복
신윤복 작 월하정인. 지본 담채, 세로 28.2㎝ × 가로 35.2㎝, 간송미술관 소장
1758 ~ ?, 조선 화가)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이다. 30점으로 구성된 국보 135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申潤福筆 風俗圖 畵帖) 중 한 점이다.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 ~ 1962, 수장가)이 1930년 일본 오사카의 고물상에서 사들여온 것이다.

맞배지붕 기와집에 규격화 된 벽돌로 쌓은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울안에 나무도 잘 가꾸어져 있는 모습이다. 당시로서는 예사 민가가 아니다. 달이 실눈으로 담장 너머를 훔쳐본다. 거기에 쓰개치마 쓴 여인과 의관을 정제한 남자, 두 정인이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차림새가 보통 신분이 아니다. 보기에 사내는 어디론가 가자하고, 여인은 망설이는 듯 보인다. 서로의 마음을 어찌 알랴.



2011년 천문학자 이태형((李泰炯, 1964.12.11. ~ 천문우주기획 대표이사)은 초승달이 위로 볼록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월식을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 했다. 2019년 고증도 했다. 승정원일기 관측기록 등을 참고하니, 신윤복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두 번의 부분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1784년 8월 30일과 1793년 8월 21일 이다. 1784년 해당 일에는 비가와 달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니, 1793년 8월 21일 상황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흥미진진한 연구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그림은 모두 상징으로 되어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화제를 보자 "달 흐릿한 깊은 밤, 두 사람 심사는 두 사람만 알리라(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이다. 삼경은 자시, 즉 밤 11시에서 이튿날 1시 사이로 한밤중을 의미한다. 바닷가가 아니고서야 달의 위치도 너무 낮다. 삼경의 상징으로 달을 차용한 것 아닐까? 정인(情人)은 남몰래 정을 통하는 남녀 사이 서로를 이르는 말이다. 다른 사람 눈에 띌까 조심스러운 상황인데 등불은 왜 켜는가? 사내가 들고 있는 등도 그저 야밤임을 암시하는 장치 아니겠는가? 달이 떠있는 하늘만 어둡지 어두운 곳이 하나도 없다. 건물, 나뭇잎, 담장, 인물 등 모두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초승달과 등불 덕에 거리낌 없이 한밤중으로 인식한다. 두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느낀다.

화제의 둘째 행은 김명원(酒隱 金命元, 1534 ~ 1602, 조선 문신, 좌의정)의 시 <별리(別離)>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별리의 내용은 이렇다. "창 밖 깊은 밤 가는 비 내릴 적에 / 두 사람 심사는 두 사람 만 알리라 / 애틋한 정 아쉬운데 하늘이 밝아오니 / 비단 옷깃 부여잡고 뒷날을 기약하네 (窓外三更細雨時 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 更把羅衫問後期)"

별리를 그린 시의도(詩意圖)라면 연인이 꼬박 밤새우고 작별하는 순간이다. 삼경은 한밤중이 아니라 온 밤이 된다. 외간 남자를 불러들였던 모양이다. 비 그치고 날이 밝아오자, 옷매무세 바로하고 길을 나선다. 고개 든 조각달이 이별하는 연인을 훔쳐본다. 못내 아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갈팡질팡한다. 밤새 나눈 언약도 의미가 없다. 각기 자신의 마음만 되새기고 있다. 애꿎은 등불만 타들어간다.

작가가 숨긴 이야기를 모두 찾아내기는 어렵다. 애호가가 많아, 다수의 감상문을 읽어볼 수 있었다. 천차만별이다. 특별한 상상력도 많다. 필자 생각 몇 가지를 적어 보았다. 보기에 따라서도 그 차이가 크다.

예술작품뿐이 아니다. 인격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이 담겨있으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할 마땅한 이유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