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석 변호사 |
우선 '부모 중 부친이 사망했고, 모친과 미성년 자녀만 남았다'고 가정해 보자. 현행법제 안에서 미성년자는 법률행위를 단독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인 모친이 미성년자를 대리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또한 상속 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한 채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는 채무 초과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특별한정승인도 할 수 있도록 현행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친이 채무초과 사실을 잘 몰랐거나 채무 초과 사실을 알고도 단순승인을 하거나 특별한정승인을 하지 않게 되면 미성년자인 자녀에게 고스란히 부친의 채무가 상속되어버리게 된다. 미성년 자녀의 경우에는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친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채무를 상속받게 되는 악 결과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채무초과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의 인식 기준은 미성년 자녀가 아니라 법정대리인인 모친을 기준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간인 3개월이 지나서 미성년 자녀가 채무 초과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 자녀는 별도로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가 있다. 현행 법 규정과 법 규정에 충실한 대법원의 해석으로 인해 모친의 잘못으로 인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부친의 막대한 채무를 평생 갚거나 사회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파산까지 해야 하는 억울한 사례가 발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억울한 사례를 막기 위해서 민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던 것이다.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성년자가 단순승인을 하거나 단순승인 의제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성년이 되기 전에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경우에는 성년이 된 날로부터 6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고,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6월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민법이 개정된다면 미성년자 모친의 잘못으로 단순승인이 되어 버린 경우, 미성년자인 자녀가 부친이 돌아가실 때 남겨 놓은 재산은 없고 채무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성년이 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고, 만약에 미성년일 때 부친의 채무 초과 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 성년이 돼서 채무 초과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다시 한정승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모친의 단순승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성년 자녀는 자기결정권과 재산권의 처분에 대하여 성년이 된 뒤에 다시 한번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상속절차에서 빚보다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재산보다 빚을 더 많이 물려받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빚을 의도적으로 물려받는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빚을 자기 책임의 범위 밖에서 물려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아무런 법률행위 능력이 없었던 미성년 자녀에게 상속 빚을 물려주지 않도록 하는 이번 민법 개정 법률안이 나온 것은 뒤늦은 감도 있지만 하루빨리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송은석 행복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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