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
롱이어비엔은 스발바르의 여느 정착촌과 마찬가지로 1900년대 초 석탄채광을 위해 세워진 마을에서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렸으나 석탄 산업의 경기 하락으로 큰 위기에 직면했다. 위기는 그들에게 기회였을까? 몰락하는 석탄산업 대신 북극권 관광과 과학 연구의 거점으로 새롭게 눈을 돌려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근에는 롱이어비엔의 거주민 보다 많은 3~4천 명의 관광객을 실은 대형 크루즈 선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노르웨이에는 주요 도시마다 오슬로대학교, 트론헤임과학기술대학교, 노르웨이북극대학교 등 거점 대학들이 설립돼 있다. 롱이어비엔에는 노르웨이의 주요 대학들과 노르웨이 극지연구소 등 북극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스발바르대학연구센터가 마을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북극에 관심 있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이곳에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시설을 운영하며 다양한 북극탐사 활동을 돕고 있다. 즉, 북극탐사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스발바르조약 100주년 기념행사가 스발바르대학연구센터에서 개최된 이유이기도 하다. 스발바르대학연구센터는 스발바르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는데 초기 탐험가와 정착민들의 삶을 살펴보고 싶다면 한번 방문해보길 바란다.
스발바르대학연구센터에서 마을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마을 한 가운데 고단한 석탄광부의 동상이 서 있다. 개척자로서의 도전 정신과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은 마을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노르웨이에서 그것도 육로로 접근이 불가능한 북극 오지 마을이기에 살인적인 물가가 예상되지만, 본국인 노르웨이에 비해 세금이 낮아 의외의 득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롱이어비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중 하나는 바로 스발바르 교회(Svalbard Kirke)다. 1921년 건립됐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전소돼 1958년 재건됐다. 교회 지붕은 북유럽 스타일의 나무판자를 엉긴 형태이며 외벽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롱이어비엔 어디에서도 눈에 띈다. 교회 인근에는 초기 정착민들의 처절했던 삶을 생생히 알려주는 나무 십자가 무덤이 많이 보이는데, 1950년대 이후에는 이곳에서의 시체 매장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임산부는 출산 예정일 3주 전에 스발바르 군도 밖으로 이동하도록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스발바르에서의 생활할 수 있는 권리는 있어도 태어나거나 묻힐 권리는 없는 무주지(無主地)의 슬픈 현실이다.
마을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외곽의 산기슭에는 세계종자보관소(global seed vault)가 있다. 인류가 멸종되더라도 그 흔적과 유산만은 보존될 수 있도록 약 100만 종의 종자들이 영구 보관되어 있다. 약 2만 종 이상의 우리나라 종자도 여기에 보관돼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방문할 수 없는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세계종자보관소 주변의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2017년 홍수가 발생, 누수 현상이 나타나 최근 새로운 전시실로 건설 중에 있다. 다행히 보관소 내부까지는 피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에는 영구동토로 여겨졌던 곳이기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다.
2023년에는 롱이어비엔에서 120년간 석탄채광을 이어온 마지막 석탄광산이 문을 닫을 예정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구에서 산업화된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오지 마을 중 하나인 롱이어비엔에도 적잖은 변화를 요구한다. 두 달 후 기후변화로 바뀌고 있는 북극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스발바르 피오르드 탐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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