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는 190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도시 피게레스(Figures)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그가 태어나기 전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의 내면은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죽음이 무의식 세계를 탐하고 자기 삶을 기행으로 끌어가는 원동력이 됐던 반면 죽음을 두려워하며 거부했다. 죽은 형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죽은 형과 다른 존재로 보이길 원해 오롯이 자기애와 자기표현으로 똘똘 뭉쳐 살고자 노력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저서를 접하며 무의식으로부터 심상을 끌어내는 환각적 상태를 '편집광적 비판'이라고 부르며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달리의 그림은 내부의 묘한 무의식이 출렁거리는 듯하다. 그 출렁거림에 뱃멀미 하듯 그의 작품세계로 빠져든다. 달리의 내면을 보면서 나와의 교차점을 찾는 게 이번 전시 관람 속 나만의 미션이었다.
달리의 작품을 처음 접한 30년 전, 나는 초현실주의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렵게만 느꼈다. 예술의 흐름과 변화에 있어서 시대마다 새로운 예술이 출현하는 초석은 '미술'이라 생각한다. 미술은 가장 민감하며 예민한 개인적 예술표현이 극대화돼 흘러온 시장이다. 이러한 예술의 새로운 양식의 변화는 연극도 변화로 이어졌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시대별 사상의 변화에 연극도 동참하며 변모했다. 초현실주의나 잔혹 연극 등을 공부한 나는 새로운 매력에 심취했다. 달리의 작품은 무한한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외로운 개인이 달 표면에 도착해 그 외로움 끝에 환호하며 기쁘게 깃발을 꽂는 짜릿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달리를 찾아왔다. 인파로 북적인 전시장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나는 오디오 설명을 들으며 그림 속 그의 마음을 찾으며 신이 났다. 전시는 친절했으며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 플로리다의 달리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3대 미술관의 협업으로 기획된 만큼, 국내 최대 달리 원화 작품전으로 볼거리가 풍부했다.
전시 막바지엔 사진 촬영도 가능했고 영상이 재생되어 마치 달리의 꿈속을 산책하는 듯한 경험이 가능했다. '메이 웨스트 룸'(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원작품을 바탕으로 재현했다고 한다)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입체적인 기법과 이중의 의미는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였는지 알 수 있었고, 히치콕과의 협업으로 만든 영화 '스펠바운드'도 짧지만 강렬하게 볼 수 있었다. 히치콕과의 협업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게 되면서 왠지 이전부터 두 예술가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던 터라 역시 하며 즐거워했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해 놓지 않고 달리의 어릴 적부터 시간의 흐름으로 그의 생애를 두루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섹션별로 색을 다르게 하여 공간을 구성한 전시였다.
달리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사람이다. 자신을 천재라 불렀고 얄밉게도 그는 천재가 맞다. 그림뿐 아니라 영화, 연극, 동화 삽화 그리고 상업적인 천재성까지 뛰어나 츄파춥스 사탕 포장 디자인까지 하는 등 다양하고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버린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상징물의 오브제가 존재한다. 사랑했던 여인 갈라, 녹아내리는 시계, 개미, 목발 등 작품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중 신발이 있다. 그는 신발에 현실을 함축하여 의미를 넣었다. 잠시 달리 작품을 보다가 문득 울어버렸다. 무의식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였던 달리는 누구보다 현실의 지금 순간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내가 지금 신고 있는 현실이라는 신발은 나의 발목을 붙잡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요즘 난 누구보다 나만의 신발을 찾고 싶다. 달리와 나의 마음에 교차점을 찾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피곤해졌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버린 에너지에… 나의 브랜드는 뭘까?
"평균 이상의 내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다!" -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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