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감개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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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호테 世窓密視] 감개무량

"작가는 글만 써야지 무슨 노동?"

  • 승인 2022-04-24 10:4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얼마 전 감동의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내가 그동안 저술한 네 권의 저서를 모두 구입하여 읽으셨다는 경기도 Y 시(市)의 독자님이었다. 가히 열성 독자에 다름 아니었다.

SNS 시대가 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급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금세 드러나는 팩트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 뿐, 책을 손에 든 이는 전무하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자그마치 내가 그동안 출간한 저서를 몽땅 읽으셨거나, 지금도 보고 있다는 독자님의 진심은 정말 감개무량(感慨無量)의 용광로를 제공했다.

감개무량은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느낌이 끝이 없음, 또는 그런 감동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이러한 파격과 '사달'의 단초는 모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제공했다.

새벽에 방송되는 전국 방송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나를 '인생 구단'으로 소개했다. 분명 과분이자 과찬이었다. 글만 써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게 한국 작가의 현실이다. 그래서 나 또한 평일엔 공공근로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있다.



온종일 삽질 따위의 이른바 '노가다'를 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파김치가 되어 쭉 뻗곤 한다. 따라서 예전처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집필하는 따위도 호사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나는 그동안 누렸던(?) '글 쓰는 홍키호테'와 '독서 전도사', '사자성어 달인'에 이어 '인생 구단'까지 섭렵함에 따라 자그마치 네 체급을 석권한 셈이 되었다. 그야말로 사관왕(四冠王)이었다.

이런 감흥은 분명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경도된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작금이거늘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어서야 어디 삭막해서 살맛이 날까….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에게 감동의 이메일을 보내주신 독자님께서는 나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이셨다. '나처럼 미천한 무지렁이를?' 그렇지만 사양하거나 피한다는 것은 평소 '용감한 홍키호테'를 자처하는 나와는 부합되지 않았다.

그래서 만날 날짜를 약속하여 동춘당공원에서 뵙게 되었다. Y 시에서 차량으로 오신다는 독자님 입장을 십분 고려한 것이다. 대전 IC를 나오면 10분여 거기에 위치한 동춘당공원은 마침맞게 튤립 등의 꽃 대궐까지 만화방창(萬化方暢)하여 금상첨화였다.

사모님과 동행하신 독자 박00 님을 처음으로 뵈었지만, 흡사 십년지기인 양 반가웠다. 그건 독자와 작가와의 경계가 만남을 통하여 허물없이 파괴되면서 가져다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산책 겸 담소를 나누고 동춘당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드렸다. 이어선 보쌈과 매생이 칼국수를 잘하는 단골식당을 찾았다. "다음엔 Y시로 사모님과 함께 꼭 놀러 오시라!"는 신신당부를 들으며 배웅을 마쳤다.

그 뒤로도 박00 님과는 SNS로 여전히 소통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무려 2년 1개월 만이다. 암흑의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부도, 파산의 피해자가 되었다.

영업시간 제한까지 사라진 덕분에 장사를 하는 분들, 특히 식당업 사장님과 종사자들까지 덩달아 "감개무량하다!"는 외침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썩하다.

어제는 평소 나를 끔찍이 아껴주시는 모 이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근황을 물으시기에 공공근로를 하느라 힘들다고 이실직고했다. "홍 작가처럼 유능한 사람은 글만 써야지 그 나이에 무슨 노동?"이냐며 좋은 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또 한 번 감개무량의 맑은 호수에 빠졌다. 감개무량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초경서반-홍경석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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