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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쌀이 주식이지만 뭐가 되든 하루에 한 두번은 밀가루 음식을 먹을 것이다. 밀가루로 된 음식은 다양하다. 온갖 국수와 중국 음식들, 과자, 빵, 튀김…. 이맘때 별미인 미나리전도 밀가루가 재료다. 마트에 진열된 과자를 보라. 고객들이 저마다 끄는 카트엔 과자가 기본으로 담긴다. 달콤한 빵 굽는 냄새를 풍기는 빵집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휴일 은행동 성심당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더미같이 쌓은 빵 쟁반을 들고 '뭐 더 살 것 없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이 반짝인다. 황홀할 정도로 예쁜 케이크 진열대 앞도 장사진이다. 한여름 매콤새콤한 비빔국수는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도대체 밀가루 음식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인류에게 밀은 곡물 이상의 것이다. 지구상에 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식탁은 얼마나 빈약할까. 야생 밀을 재배화해 음식으로 이용하기까지 인류는 실로 장대한 드라마를 펼쳐왔다. 밀의 발생지는 서남아시아다. 약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가 최초로 밀 재배에 성공했다. 밀은 고대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와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는 곡물 여신으로 농업을 관장하는 대지의 신이다. 하지만 밀가루를 채취하는 일은 까다로웠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오늘날의 제분방식으로 발전을 이뤘다.
유년시절의 낭만적인 추억 하나가 있다. 내 고향 마을 앞 저 멀리엔 금강이 흐른다. 어느 핸가 나는 동네 친구들과 무슨 맘인지 강에 놀러갔다. 강에 가려면 윗마을을 거쳐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그 들판은 순전히 밀밭이었다. 강가라 그런지 들판 길의 흙이 밀가루처럼 뽀얗고 고왔다. 바람에 일렁이는 키 큰 밀밭 사잇길을 우리는 고무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달렸다. 흙을 밟는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 노랗게 익은 밀을 훑어 손으로 비벼 후우 분 다음 입에 털어넣었다. 계속 씹으면 끈기가 생기고 쫄깃해진다. 영락없는 껌이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면 밀가루 속 단백질이 부풀면서 껌처럼 결합해 글루텐이 형성한다. 이 특성으로 다채로운 밀가루 음식이 세계 곳곳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손쉽게 먹던 밀가루에 빨간불이 켜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밀 농사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각국의 식량 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당장 이집트, 터키 등 밀 생산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20년 기준 20%대다. 그나마 쌀을 빼면 겨우 2.6%.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식량안보의 위기다. 식량주권이 중요한 이유다. 서울에선 칼국수가 8천원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젠 서민 음식 칼국수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쌀, 우리 밀을 지켜내야 한다.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구호품으로 허기를 때우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부디 그들에게 다시 평화의 봄이 오길!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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