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대전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 |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도 이미 검사에게 넘겨온 이상 수사주재자로서 검사가 청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므로 모두 검사의 영장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시 실무상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잘못되어 있으면 검사가 그 내용을 임의로 수정해 청구하는 것이 가능한 하다고 밝혔다. 만약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검사에게도 별도의 공용서류로써 대외적인 효력을 갖는 것이라면 그러한 공문서에 검사가 임의로 수정한다면 그것은 공용서류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용납될 수 없어 새로이 영장청구서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라는 반론을 댔다. 자기 의견이 맞다는 것에 직을 걸었던 부장검사가 슬며시 찾아와 내 말이 맞다고 하면서 직은 그대로 유지하면 안되겠냐고 해서 웃고 넘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경찰은 영장 '신청권'이 있고, 검사는 영장 '청구권'이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형사소송법상 영장 관련 규정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영장에 의한 체포), 제201조(구속), 제215조(압수·수색·검증) 등에서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 지방법원판사의 영장을 발부받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는 국가기관인 수사기관이 '신청권', '청구권', '수사권'과 같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무슨 국민의 기본권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의무가 있을 뿐이다. 형사소송법과 같은 하위 법령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헌법 취지에 부합하게 합헌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본다.
현행 헌법이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태어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당시 입법자들이 '신청'과 '청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헌법을 개정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이미 당시 적용되는 형사소송법에서 '신청'과 '청구'를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그 의미를 간과하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언 그대로 우리 헌법은 검사만이 모든 영장을 '신청'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신청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검사에게 영장을 신청해 달라는 보조적인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이 경찰은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고 별도의 항목으로 규정하는 체계를 취하지 않고, 경찰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라고 규정한 취지를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검사는 경찰이 가져오는 영장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명시적으로 기각이라는 별도의 행위를 할 필요가 없이 다시 보완하라는 의미에서 반려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반려할 수는 없이 발부하든지 기각하든지 명확히 하여야 하는 것과 엄격하게 구분된다.
검사의 수사라는 것은 준사법기관으로서 법에 의한 지배, 적법절차의 준수 등을 철저히 감독함으로써 모든 수사기관이 수사를 행하는 데에 있어 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근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검사의 수사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우리 헌법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샘물이 혼탁하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검사가 져야 한다. 그런데 샘물을 통째로 덮어버리는 우를 범한다면 그 샘물에 의존해 살던 국민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김용규 대전지검 인권보호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