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전고등법원장이 제59회 법의날을 앞두고 중도일보와 만나 재판은 패소자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공정하고 충실한 과정을 강조했다. (사진=이성희 기자) |
-지난해 2월 대전고등법원장에 취임할 때 사법신뢰를 강조하며 '법의 지배 실현'을 강조한 바 있다. 법관이 국민에게 보여야 할 바람직한 재판은 무엇인가.
▲재판은 법관 개인의 단독플레이가 아니다. 법관 전체 또는 법관을 중심으로 하는 법조 전체의 이른바 집합적 활동이고, 개인의 업적은 그중에 하나의 파편 조각에 불과하다. 그 각각의 파편 조각인 업적이 축적되어 한편에서 사회생활의 진전을 지탱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의 존립과 활동의 기초가 되는 법을 생성하고 발전하는 거대한 결과를 낳게 된다. 더 나아가 법관의 명예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집단적이며, 오케스트라처럼 스타플레이어만으로 연주되는 게 아니고 맞추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되고 객관화된 재판에서는 어떤 법관이 맡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재판에서는 당사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 하게 하고, 법관은 이를 충분히 음미하여 공평한 입장에서 깊이 생각한 후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결정에서 그러한 판단을 내린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설명해야 하며, 경청과 판단과정 및 결정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이야말로 재판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정치권과 행정부처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에 관해 판단을 법원에 구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 시대 법관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무엇인가.
▲법원으로 오는 법률상의 분쟁도 한층 복잡해지거나 정치적인 쟁점이 관련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법관에게도 종래의 법률적 지식을 넘어서 가치관의 다양화와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광범위한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식견과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후배 법관들에게 언제나 깨어 있으면서 기계적인 타성에 젖어 편리하게 처리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고 격려하고 있다. 법관이 공부를 많이 하면 재판을 바라보고 선고할 수 있는 100가지 유형을 갖는다면 그렇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20개의 유형도 갖지 못하는 수가 있다. 분쟁을 다루다 보면 온갖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는데, 방심하게 되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법관들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만일 재판과정이 많든 적든 그러한 풍조에 빠지게 되면 결국 재판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고 법원은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법관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 없이는 사회변화에 따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쉽지 않은 힘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판사들 사이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뤄 업무만큼 개인이나 가정에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법원의 관행들이 바뀌거나 깨지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법원의 사명은 법적 분쟁을 적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법원은 국민의 분쟁해결을 통해서 권익을 보호하는 기능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창회처럼 구성원의 만족도가 최우선 가치가 되는 공동체와 기능체는 다르다. 법원은 당초 목적한 분쟁해결과 권익 보호를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구성원의 만족도를 높여가야 한다고 본다. 급하게 맹장 수술을 해야 해서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가 근로시간 초과해 퇴근해야 해 다른 의사로 교체하는 상황이라면 생명을 지키는 병원 기능체 역할은 약화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은 자신이 겪는 분쟁의 옳고 그름이 궁금해 법원에 물어보는데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아 제때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답답할 것이다. 그러한 법원에 국민이 더 많은 보수를 주면서 유지를 바랄까. 법원도 승진제도를 통한 기능체 역할을 명백히 수행할 때가 있었는데 고등법원 부장제도가 없어지면 자신을 희생하며 재판에 몰입하는 판사들에게 유인책이 사라졌다. 법원 안에 구성원들만 만족하는 공동체화가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프로라는 이유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희생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균용 대전고등법원장은 분쟁을 해소하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법원의 기능이 약화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사진=이성희 기자) |
▲재판부 구성원 3명이 법조경력 20년에 고등법원 판사 경력 3년을 갖춰 재판장급 판사로 구성된 대등재판부가 처음 만들어져 형사부를 맡고 있다. 재판부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다 수평적으로 만들어 충실한 심리에 기초한 신속한 재판이 가능해졌다. 재판의 핵심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이라는 견해에서 대등재판부는 분명한 장점을 보일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등재판부를 신설할 때 TF팀장을 맡아 제도를 설계했던 경험에서 보면, 경력이 비슷한 법관으로 이뤄져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사회에 있는 세대간의 견해 차이는 재판부 안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대등재판부에서는 그들끼리는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하는데 밖에서는 이상하다고 여기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단독화가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 대전·충청 주민들에게 충실한 재판이 제공되도록 하겠다.
-쉬운 판결문 쓰는 판사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지금도 판결문에 대한 그러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열린 법원과 이해하기 쉬운 재판이라는 이념은 사법운영 전반에 걸쳐서 요구된다. 판결문 작성에서도 그와 같은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 형사재판에서는 재판받는 피고인 자신이 판결을 듣고 곧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형사재판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많으면 방청이나 보도를 통해 사회 일반에 주는 효과나 영향이라는 점에서도 일반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항소심의 민사판결 주문표시를 취소판결의 관행과 달리 당사자나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변경판결을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실무 관행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판결문은 어쩌면 세금고지서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이 판사에게 설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법원은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판결문을 간략하게 작성할 게 아니라 보다 상세하게 작성하려 노력해야 한다. 재판은 패소자를 설득해 승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판결문 문장은 이해하기 쉽게 단문으로 일상적 용어를 사용하도록 후배 법관들에게 권하고 있다.
-대전고등법원장 취임 1년을 맞았는데 20년 전에 대전과 맺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대전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개최되던 해 대전지방법원 초임 부장판사로 부임해 1년간 법정에서 지역민과 애환을 나눈 바 있다. 대전지법 초임 부장판사로 재임했을 때 '법정에 섰을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지 않고 소송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심정을 이해하는 재판장이 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대전에 특허법원 청사를 마련해 개원하는 준비위원회 실무를 담당한 경험도 대전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다. 특허법원을 대전에 개원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허 무효 여부를 가리는 심결취소소송의 소송대리권을 변호사와 변리사 중에서 누가 맡을 것인지 법원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대법원에서 발표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해외 사례와 국내 상황을 연구해 심결취소소송은 민사소송과 다르고 쟁점은 한정돼 있어 변리사에게 대리권 있다고 최종 의견을 보고했다. 이때부터 변리사가 심결 취소소송에 소송대리 참여가 가능해졌다.
-지난 30년간 재판을 맡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 있나.
▲중증의 틱 장애(투렛증후군)를 겪는 사람이 장애인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재판을 맡은 적 있다.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장애로 받은 제약의 정도가 장애인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정한 장애인의 범위에 들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대해 상대적 행정입법 부작위가 헌법 11조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의 1심판결을 취소하고 중증의 틱 장애인을 구제한 판결을 했다. 선고 후에 2016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또 국내에서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초상사용권) 내용을 처음으로 판시함으로써 학설에서 논란이 되던 때에 실무상의 지침을 제시한 판결이 기억에 남는다. 지식재산권 관련 사건으로 초상 등을 이용한 비즈니스가 콘텐츠 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고, 실무상 법적 기준을 정해 초상 등의 적절한 이용을 꾀할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단체보험약관의 해석에 관한 분쟁에서 원고의 자녀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충청 주민 또는 후배 법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지갑도 없고 힘도 없는 법원은 오직 국민의 신뢰에 기초해서만 존립할 수 있다. 묵묵히 법원의 본연의 임무인 법적 분쟁을 적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매진하고 있는 후배 법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법조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이다.
법의 지배를 실현한다는 불변의 이념을 기반으로 해서 공정하고 충실한 재판절차를 통해서만 사법의 신뢰와 법관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란다. 대전·충청 주민께서도 법원의 사명을 이해해주시고 이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기대에 부응해서 우리나라를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가 살해되는 곳이 아니라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정의와 진실이 상식이 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대담=고미선 사회과학부장·정리=임병안 기자·사진=이성희 기자
●이균용 대전고등법원장
▲경남 함안(59) 출신 ▲부산중앙고·서울대법대 ▲사시26회(198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 ▲대전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부장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광주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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