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제가 이곳에서 신문을 발행해온 지 올해로 32주년이 되더군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참 많은 소중한 분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뜬금없이 초청해 송구합니다만, 옛날 형님과 함께한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소식 전하니 역정 내지 마시고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카톡'으로 온 메시지 끝에는 '마음 전하는 곳'이라는 문구와 함께 은행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10년이 훨씬 더 넘은 어느 시의 부시장 시절, 시청 출입 기자들과 다양한 형태로 교류했는데 중앙과 지방 언론사 외에 지역 언론사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역 언론사에서는 대개 일주일에 한 차례 신문을 발행하는데 혼자서 사장, 편집국장, 기자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혼자서 사물놀이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시하진 않았다. 다만, 일한 기간이 1년으로 짧았고, 그 후로는 서로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보다 더 많이 시간이 지났는데, 전혀 소식이 없던 사람이 뜬금없이 형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카톡'으로 아들 결혼 소식을 알리니 황당했다. 축의금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고향에서 매년 열리는 동창회에는 참석자가 거의 일정하다. 못 보던 동창이 나타나면 더 반가운 게 사실인데 얼마 뒤 그 못 보던 동창이 청첩장을 보냈다. 그동안 동창 경조사에 나 몰라라 하던 그가 느닷없이 동창회에 나타난 목적이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그래도 동창이니 모른 척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공무원 선배는 퇴직을 1년 앞두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아들과 딸 두 사람을 결혼시켰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식 혼사를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퇴직 후 소식이 끊어지고 애경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얄팍한 처신에 좀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주시 부시장으로 2년 일한 후, 경기도청의 국장으로 내정되었을 때의 일이다. 인사발령을 앞두고 아들이 결혼하게 됐다. 이미 6개월 전쯤 양가 가족이 상견례를 마치고 날을 정한 건데 의도치 않게 시기가 묘했다. 자칫 축의금 챙기고 떠난 속칭 '먹튀'(먹고 튄 사람)가 될 판이라 시장과 몇몇 간부에게만 알렸다. 결혼식을 마친 나중, 알려주지 않아 섭섭하다는 사람도 있기는 했으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봄,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라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렀다. 외부에 부음을 전혀 알리지 않은 터라 썰렁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애틋한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모셨다는 생각에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어느 나라든 혼사는 경사이고 우리나라도 이 같은 미풍양속이 여전하다. 장례도 마찬가지다. 직계가족이 사망하면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것이 관례이자 미덕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애경사 소식이 날아들면 세금고지서를 받아든 기분일 때가 있다. 평소 전혀 교류가 없던 사람이 보낸 청첩이나 부음(訃音)일 때 특히 그렇다. 더욱이 일을 대행업체에 맡기면 결례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부분 전화기나 메일에 입력된 모두에게 일괄 통보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족이 조용하게 애경사를 치를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니 조촐하더라도 품격 있게 치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마음 편하고, 조상님도 기뻐하지 않을까?
홍승표/ 전 경기도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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