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닮은꼴 법칙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닮은꼴 법칙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승인 2022-04-14 17:17
  • 신문게재 2022-04-15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검증 실험을 거쳐야 한다. 이런 안전 실험은 어떻게 하는 걸까? 원전 설비를 원형 그대로 실험하기에는 너무 크고, 후쿠시마 사고 같은 비상 상황을 똑같이 연출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닮은꼴'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닮은꼴 모형은 단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미터(m), 킬로그램(kg), 초(s), 암페어(A), 켈빈(K), 몰(mol), 칸델라(Cd). 이들의 공통점은 '기본 물리량 단위'라는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시스템의 특성은 모두 '물리량'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7가지 단위만 사용하고 있지 않다. 가령, 길이(m)에서 나아가 넓이(㎡), 부피(㎥), 속도(m/s)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이처럼 기본 물리량을 조합해 만들어낸 새로운 물리량이 '유도 물리량'이다.

물리량 단위는 다른 말로 '차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 풀어쓸 수 있다. 그런데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유도 물리량도 있다. 바로 '무차원수'다. 백분율(%), 백만분율(ppm), 소음을 측정하는 데시벨(dB), 산성과 염기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농도 지수(pH)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소 추상적인 개념처럼 들리는 무차원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체나 액체의 특성을 파악할 때 유용하다. 흐르는 유체의 특성을 해석하고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층류'인지 '난류'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유체가 느린 속도로 흐르는 '층류'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분석이 쉽다. 그러나 속도가 빠른 '난류'에서는 그렇지 않다. 시공간적으로 무질서하고 비정상적인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때 활용하는 것이 유체역학계 권위자 '오스본 레이놀즈(Osborne Reynolds)'의 이름에서 따온 무차원수, '레이놀즈수'다. 레이놀즈수는 유체가 흐르는 속도, 밀도, 점도 그리고 유체가 들어간 배관의 지름 등 여러 물리량을 조합해 도출한 개념이다. 쉽게 말해 관성력과 점성력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 계산에 따르면, 레이놀즈수가 2000보다 작으면 층류고 4000보다 크면 난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레이놀즈수가 일치하는 경우에는 둘 간의 유동 특성이 같다. 배관 크기, 유체 속도, 밀도, 점성에 상관없이 말이다. 따라서 레이놀즈수는 유동이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파악하는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는 유체보다 다소 복잡한 시스템을 살펴보자. 앞서 예로 든 레이놀즈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상 무차원수가 같다면 서로 닮은꼴이다. 즉, 기하학적인 크기와 무관하게 똑같은 물리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원형 그대로 모의하면 가장 정확하고 편리하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형이 너무 작아서 다루기 힘들거나, 너무 커서 곤란한 경우가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이중 후자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2007년, 원전 사고를 미리 실험할 수 있는 대형 연구시설을 자체기술로 설계했다. 지하 3층, 지상 6층, 높이 30m에 이르며 배관들과 각종 제어 장치들로 구성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실험장치', '아틀라스(ATLAS)'다. 국내 신형 경수로 'APR1400'을 높이는 1/2, 부피는 1/288로 축소한 형태다. APR1400 외 국내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이라면 모두 모의할 수 있다. 최대 185기압, 섭씨 370도의 극한 상황을 구현해낸다. 한편, 우라늄 핵연료 대신 전기 히터를 사용해 방사선 사고 우려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실제로 ATLAS는 국내 유일은 물론, 세계 3대 규모의 원전 안전 연구시설로 꼽힌다. 여러 차례에 걸쳐 'OECD/NEA' 국제 공동연구를 이끄는 이유다.

이처럼 무차원수를 이용한 닮은꼴 법칙은 원자력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도 적격이다. 실험의 비용을 줄이거나 불가능한 실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 신통방통한 과학 도구는 지금도 수많은 공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