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울진으로 기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꽃비가 머리칼 봄빛으로 물들이고, 나무 우듬지마다 여린 손가락을 기어이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숲에만 봄이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해의 은빛 윤슬 아래 조곤조곤 바쁜 집게 몇 마리 미역이 슬슬 쓰다듬고 수평선은 기인 입꼬리 올리며 너른 품을 열었지요.
연잎성게의 걸음걸이만큼 고요하고 분주한 울진 바다, 그곳에 그 녀석이 있었습니다.
해초에 매달려 야곰야곰 흔들흔들 춤추고 있는 몰랑한 바다토끼의 작은 두 귀를 보았습니다.
"군소야~ 군소야~안녕 "
아이가 다가가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군소는 문어의 친척이라 합니다. 겁이 나면 먹물 대신 보랏빛 액체를 스카프처럼 뿜어내는데 아이의 손길은 안심이 되었는지 아무것도 내뿜지 않고 아주 느릿느릿 탐색하듯 손바닥 위로 올랐습니다. 달팽이 같기도 하고 쫑긋한 두 귀가 토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려주면 이내 해초에 붙어 부지런히 기어다녔습니다.
바다에서 만난 군소 |
한 마리 또 한 마리. 또 다른 삶의 언저리로 옮아가는 생을 지켜보다가 우리는 잠시 말도 생각도 잊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해변에 가까이 있는 군소를 들어 바다 안쪽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지마!! 저 멀리있는 미역 먹어~ 알았지?!!"
그러나 어느새 다시 밀려와 흔들흔들 반짝반짝,
그것이 삶이라는 듯.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생의 순환, 아픔도, 기쁨도, 죽음도 삶도 결국 하나라는 것을 어찌 말해줘야 할까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울진바다 |
살아 있는 어떤 존재에게도 같은 순간은 없겠지요. 똑같아 보이는 심방박동이 매번 다른 움직임으로 삶을 펌프질 하고 있다는 것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생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어미의 양수에 발목을 담근 채 봄의 빛으로 윤슬이 눈부셨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신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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