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암살 표적 1호, 미국마저 그의 피신을 종용했지만 그는 '나에게 항공편 제공이 아니라 더 많은 탄약이 필요하다' 란 말로 수도 키이우에 남아 결사항전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그가 수도 키이우 거리를 걸으며 올린 셀카 SNS 영상을 보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국민 여러분, 당대표도 비서실장도 총리도 고문도 그리고 대통령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우리의 진실은 이곳이 우리의 땅, 우리의 조국, 우리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키겠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 전쟁으로 확대를 두려워해 잠자고 있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의식을 깨웠다는 건 분명하다.
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해도 같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 형제국끼리 타협점을 찾아 평화협정을 잘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에다, 8년 이상 친서방과 친러 세력 간에 내전으로 동서가 갈라서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직접적인 군사침공은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약소국의 대통령이라면 정치적 줄타기를 잘해야지 하는 좀 비애감도 들었다.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오버랩 되기도 하고, 잠재의식에 남아있는 악몽과도 같은 6·25 내전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침략의 당사자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친러세력의 독립을 옹호하며 실제로 한국식 분단휴전협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흘렸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푸틴의 역사의식도 그렇지만 한국이 겪는 분단의 아픔에는 조금도 공감대가 없는 군사강대국의 독재자식 발언에….
결국, 전쟁의 양상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군사력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푸틴의 말대로 동서로 분단되는 상황이 초래될지 모른다. 그러나 젤렌스키에게 응원의 SNS 메시지를 보냈던 많은 세계인은 달리 생각할 것이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지도자는 위기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그저 외교적 줄타기로 위기를 모면하기 보다는 목숨을 내놓고 주권의지를 불태우는 그에게서 포효하는 사자와 같은 자유인의 모습을 상기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늘 보수 쪽에서는 중국이나 북한의 전략적 우호 관계와 도발적인 군사행동에 대해 경계하면서 평화를 명목으로 경제지원과 정치적 줄타기만 한다고 억지평화가 지켜지겠냐고 반발하곤 한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진보정권의 억지평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보수정권으로의 변화를 꾀했다고 분석하는 정치평론가도 있다.
한국은 분단국가이면서 지정학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인 나라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강대국간 전쟁놀이터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건 젤렌스키와 같은 국민을 저버리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돈크라이포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 1976년 공연된 록 오페라 '에비타(Evita)'의 주제곡이다. 이 노래를 '돈크라이포미 우크라이나'로 바꾸어서 들려주고 싶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우크라이나여. 당신을 버리지 않았어요. 어쩌면 엉망진창인 나이지만…, 깨달았어요. 당신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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