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소년은 소녀를 사랑했다. 소녀도 마음이 같았다. 열여덟 살의 봄날, 소년은 군인들의 총에 죽었다. 암매장되었다. 시신을 찾지 못해 소년의 유품만 공원묘지에 묻혔다. 소년의 무덤에 작은 목비가 세워졌다. 소녀는 소년의 목비에 자기 이름도 써넣었다. 소녀는 소년과 영혼별 하나가 되고 싶었다. 소녀가 마흔 살의 여자가 되었을 때, 열사 묘역에 있던 소년의 몸도 주인을 찾았다. 디엔에이 검사 힘이었다. 소년의 유품과 목비는 민주열사 묘역으로 옮겨졌다. 새 묘비에 소년의 이름이 새겨졌다. 목비에 있던 소녀의 이름도 함께 왔다.
사내는 딸의 머리를 붙들었다. 아내는 딸의 다리를 잡았다. 방으로 딸을 끌고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자폐증을 앓는 딸은 발작할 때마다 괴력을 발휘했다. 딸이 사내의 팔을 물어뜯으려고 발버둥 쳤다. 얼굴은 이미 할퀴었다. 사내는 온 힘을 다해 딸의 몸을 눌렀다. 딸은 괴성을 질렀다. 아내는 수건으로 딸의 입을 틀어막았다. 새벽이었다. 아내는 저녁에 먹일 약을 가져와 딸의 입에 털어 넣었다. 딸의 몸이 조금 늘어졌다. 아내가 그만 딸을 풀어주자며 눈물을 흘렸다. 힘이 소진된 사내의 누르기가 잠시 느슨해지자 딸이 벌떡 일어나 사내의 뺨을 때렸다. 따끔했다.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사내는 다시 딸의 팔을 잡고 몸을 눌렀다. 아내가 사내더러 나가보라고 말했다. 물휴지로 얼굴을 대충 훔친 사내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첫 출근이었다. 늦었다.
사내는 조선의 궁궐을 지키는 군대의 병졸로 취직했다. 오방이었다. 오방기를 들었다. 사내는 조금 웃었다. 쉰이 넘어 낙하산을 타고 취업한 자리가 조선의 수문군 최말단 졸병 문지기였다. 딸과의 전쟁을 피하러 집 나와 취직을 했는데, 그곳도 날마다 가상의 전투와 진짜 싸움이 반복되는 복합 전쟁터였다. 작은 군대 안에서 일상의 자잘한 전쟁들이 치러지고 있었다. 사내의 군대는 하루 세 차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궁궐수문군 교대식을 열었다. 행사 끝 무렵에 관람객을 위한 포토타임이 열렸다. 장끼 꼬리와 공작 털로 만든 전립을 쓴 수문장이 단연 인기를 얻었다. 왕의 교지를 든 승정원의 주서나 환도를 차고 홍립을 쓴 내시부의 사약 옆에도 관람객이 많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대한문 앞 광장에는 휑뎅그렁하니 오방들의 오방기만 나부꼈다. 오방기를 든 사내는 자신이 영락없는 수문군 졸병 신세라고 생각했다. 고향 집 감나무가 그리웠다.
사내가 월도를 든 배역을 맡았던 날이었다. 포토타임이 되었다. 월도를 땅에 세우고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한 여자가 사내에게 왔다. 사내의 기억 속에 한 올의 불빛으로 남았던 여자였다. 갈색 얼굴의 여자가 하얗게 웃었다. 서경이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봄 소풍 갔을 때, 목을 젖히고 웃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소녀가 서경이었다. 소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다. 어떤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 열사 소년의 묘비에서 서경을 발견한 시댁 사람들이 그녀를 내쫓았다. 서경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덕수궁 말채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서경의 몸은 죽어가고 있었다. 조선의 수문군 오방이었던 사내는 주서로 승진했다.
이중섭이 쓴 <포토타임>의 일부다. 이중섭은 쉰일곱의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다. 그때까지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불사신이다. 그의 스승이자 소설가인 김경에 따르면 이중섭은 남다른 연민과 통찰력을 가진 작가다. <포토타임>은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소년과 소녀와 사내가 겪어 낸 시대사를 덕수궁 정문 앞 광장의 수문군 교대식 행사로 엮어냈다. 수문군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신산한 삶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수문군의 시선으로 곡진하게 관찰한 일기다. 포토타임은 이념과 세대와 인종과 민족과 종교가 일시적이나마 적대를 유보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시간이다.
<포토타임>은 또 말한다. 보는 자도 곧 보이는 자다. 찍히는 자도 찍는 자를 기억하고 기억에 기록한다. 시간의 기억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찍기만 하는 자도, 찍히기만 하는 자도 없다. 포토타임 덕분에 사회적 진실을 끝내 침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토타임은 스스로 말을 걸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암흑 속일지라도 불빛 같은 기억 한 장씩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바닥을 뒹구는 듯한 느낌에 빠질 때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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