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군다나 지난 겨우내 농땡이(?)를 피웠던 육신인지라 적응을 못 해 더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중도에 그만둘까도 심각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취업한 '2022 대전형 공공일자리'였다.
이 일자리는 최소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새벽부터 일어나 남편의 출근 준비로 즐겁게 분주한 아내를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었다. 공공일자리의 작업 패턴은 40분 근로에 20분 휴식 수순이다.
일은 여전히 고되지만, 이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런저런 한담(閑談)을 나누는 게 그나마 위안의 플랫폼이다. 그제는 이 시간에 딸 얘기가 화두로 등장했다. "나는 딸만 둘인데 아직 미혼이라서 걱정입니다."
"우리 딸은 어찌나 자상하고 꼼꼼한지 집(친정)에만 왔다 하면, 집에 없는 식료품을 죄 조사한 뒤 가득 채워놓고 간답니다." 당연히 그분의 따님을 칭찬했다. "정말 요즘 보기 드문 효녀네요. 그러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이번엔 내 차례였다. 그러나 이내 함구하고 말았다. 고리타분하게 사교육 없이도 명문대를 나왔다느니, 결혼하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하루 간격으로 친정엄마(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안부를 챙기고 수다까지 떠는 '불변의 효녀'라는 얘기를 꾹 참았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내 또래, 즉 베이비붐 세대는 통상 둘 내지 하나의 자녀를 두고 있다. 더욱이 달랑 딸만 하나 둔 집안이라고 하면 그 딸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데다가 그 딸이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재원이라고 하면 단박 모두가 부러워한다.
지난 2016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두는 단연 이화여대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입학을 취소한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런데 그러한 유형의 사고가 다시금 발생했다.
부산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을 취소했다. 지난해 8월 조 씨에 대한 부정 입학 의혹을 자체 조사하고, 의전원 입학 취소 예비행정처분을 발표한 지 8개월 만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문제는 이러한 결정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조 씨에 대한 의전원 입학 취소 여부는 사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향후 권력이 어디로 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3.9 대선 결과가 확정되자 비로소 움직였다는 주장이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쉬이 "대학은 권력 눈치를 본다"는 세인들의 혹평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이러한 대학의 권력 종속성은 비단 부산대에 국한하지 않았다. 이에 뒤질세라 고려대 또한 조민 씨의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입학 허가를 취소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이어 터진 이러한 뉴스에 나는 문득 '부, 고대의 부고'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부산대와 고려대의 부고(訃告)'라는 주장이다. 부고(訃告)는 사람의 죽음을 알림이란 뜻이다.
아무리 대학은 정권에 밉보이면 교육부가 내려보내는 각종의 연구 지원금까지 끊긴다고는 하지만 눈치도 이 정도까지 본다는 것은 전형적 기회주의자들의 행태가 아닐까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비록 힘든 일을 하곤 있지만, 오늘도 정정당당한 노동을 하여 생활비를 벌고 있다. 또한 딸은 물론이요, 아들까지 올바르게 가르쳤기에 나는 오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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