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아 소장 |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됐던 여성을 향하는 폭력들이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디지털성범죄 등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불과 1990년대부터 시작되어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반성매매 활동가로 성매매여성의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현장을 지켜왔다. 사람의 몸을 쾌락의 도구 삼아 '본전을 뽑겠다'는 성구매 행위자들이 얼마나 폭력적 언행들을 일삼는지, 가출과 빈곤, 그루밍의 과정으로 성매매시장에 유인된 여성들이 깊은 수렁 속에서 왜 손을 내밀지 못하는지를 무수하게 듣고 보아왔다. 이 현장에서 세월을 보낼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매매라는 행위 자체가 착취이며 구조적 차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당사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자각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논쟁으로 시끄러운 이 상황이 꽤나 심란했던지 상담소에서 지원받고 탈성매매해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A씨가 문자를 보내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쉽게도 예산낭비, 감성정치라는 말을 하고 있네요.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지원받은 여성 중에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얼마나 되고, 실제로 존재하냐 묻기까지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저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습니다. 노출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성매매를 했었고 그런 내가 이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의 존재를 이유로 여성가족부의 해체를 반대합니다. 온갖 비난을 받았어요.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저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표를 계산하면서 정작 저 같은 당사자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방관하고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이 너무 화가 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황망한 부고가 들려왔다. 허름한 모텔 달방을 전전하며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온 B씨, 수술받고 아픈 몸으로 퇴원하자마자 빚독촉에 떠밀려 업소에 나가며 칼날 위의 삶을 이어온 B씨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활동가들은 아픈 B에게 빚독촉, 출근독촉을 했던 업주와 사채업자에게 향하는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워 먹먹한 채 말을 잃었다.
성매매 여성의 죽음을 드러내 애도할 수도 없고, 다른 직업을 갖고 '평범한 삶'이 가능해졌다고 드러내 기뻐할 수 없는 낙인과 배제 속에서 혐오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순간순간 노심초사하는 우리의 이 현장을 여가부 폐지를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일상의 폭력과 차별을 피하려고 삶의 경계를 축소시켜 살아가는 약자들의 두려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뿌리 깊은 차별과 폭력이 그 이유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이다.
극과 극으로 대립하며 정치권력간 충돌 이슈가 되어버린 여성가족부 폐지논쟁에서 저급한 혐오의 상흔만 남게 하지 않으려면 무엇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할까. 여가부폐지를 넘어, 성평등과 여성인권의 방향으로 더 나은 대안적 논의를 위해 중요한 것은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이다. 피해자의 위치를 인정받기 위해 두려움에 맞서야 했던 당사자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구조적 차별로 점철된 그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논쟁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기본이다./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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