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이영주 씨의 초등학교 입학의 꿈은 현실이 됐다. 올해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초등학력 인정 행복교실에는 50~80세 33명의 어르신이 입학했다. 이 씨는 그중 최고령 새내기다.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지학(志學)과도 같다. 3월 30일 입학식을 치르고 첫 수업을 기다리는 이 씨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편집자 주>
3월 31일 대전 평생교육진흥원 행복교실에 입학한 최고령 새내기 이영주(87) 씨를 만났다/이 씨가 공부하는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
"우리 손녀가 할머니 치매 걸린다고 걱정하더라, 또 내가 공부를 못 했잖아, 옛날 사람이라 공부를 못해. 그래서 손녀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나를 데리고 신청하러 갔어. 배우는 것은 재밌고 좋은데 나이가 많다 보니까 머릿속에 잘 안 들어가네. 그래도 기운만 있다면 끝까지 하고 싶어. 배우는 건 재밌어서."
손녀의 제안은 그동안 애써 묻었던 배움의 열정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됐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려워진 형편 탓에 이 씨는 ‘국민학교’ 입학 기회를 놓쳤다.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우리 아버지가 황해도에서 금 캐는 광산 일을 크게 했는데 거기서 잘못돼서 돌아가셨어. 내가 6살 때였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우리 5남매를 데리고 친정으로 왔지만 살기가 어려워 학교를 못 간 거지. 그래도 어떻게 살다가 국문은 깨쳐서 보는 건 괜찮은데 받침 같은 게 어렵고 모르는 게 좀 많지."
입학 전 이 씨는 집에서 공책에 정성스럽게 적어가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사진=정바름 기자) |
요즘에는 알파벳 외우기에 여념이 없다. 공책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써 내리며 외우지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알파벳 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머리에만 들어갈 수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공부할 수 있어. 그동안 노인복지관에서는 그림을 열심히 그렸었는데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손재주가 좀 있는 거 같아. 손재주 있는 만큼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머리가 굳어서 들어가려나 모르겠어. 그래도 영어와 국어, 수학 다 재밌더라고. 하기 싫은 게 없어."
지난 2월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이 씨가 배웠던 교재 모습 (사진=정바름 기자) |
"나이가 많다 보니 쉽게 목표라는 걸 얘기하지 못하겠어. 고지서에 어려운 단어들이 있으면 그 뜻을 잘 모르잖아. 이 나이에 취직하려고 공부하겠어, 그동안 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 살면서 밥 먹고 남하고 얘기하는 것뿐이지, 진리를 이해하질 못하잖아. 그런 것들을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거야."
대전평생학습진흥원 행복교실 입학식 사진 (사진=평생학습진흥원 제공) |
이 씨는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그동안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익히고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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