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총리였던 데이빗 캐머런은 행복을 정부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정부도 '행복을 궁극적인 성과 지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런가? 한때 행복을 국정의 목표처럼 내세운 적이 있으나 허울뿐 경제가 늘 행복에 앞섰다. 마치 배만 부르면 행복해질 것처럼.
물론 배고픈데 행복할 수는 없다. 굳이 매슬로를 인용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생존을 위한 의식주는 해결돼야 행복이 가능함은 상식이다. 하지만 인류문화는 생존을 넘어 행복을 추구한 결과다. 생존이 기본이긴 해도 생존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좌경화된 현 정부든, 실용을 앞세운 정부든지 간에 정부 요직을 맡은 지배층은 국민의 행복은 고사하고 국민의 생존조차 뒷전, 실상 개인의 권력과 부의 세습을 탐하는 위선을 부렸다. 거기에 나 포함 많은 이들이 질색했고, 대선 기간 내내 두꺼운 부동층을 형성했다. 이제 우리도 행복을 정부가 추구해야 할 지고 가치로 여기면 어떨까. 선전용 표어가 아닌 진짜로 국민과 시민의 행복을 정부와 지자체가 추구해야 할 거시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는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행복의 길을 찾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비밀들 여러 가지 중에서 인상 깊었던 제안은 행복한 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까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핵심적인 가치 실현을 20년간 흔들림 없이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20년의 약속"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하는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행복'이다. 특히 행복을 현실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는 "권한과 예산"을 가진 독립기구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이는 지난 3월 대선 이후 새 정부의 수장이 될 대통령 당선자가 여가부 폐지를 실행하려는 터무니없는 맥락에서 경청할 가치가 충분한 제안이다. 성평등은 국민 행복의 관건이다. 그래서 성평등은 꾸준히 '20년의 약속'처럼 지속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가부의 폐지를 운운하지 않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변함없이 꾸준히 성평등을 추구할 '권한과 예산'을 가진 독립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이 불행하면 남성도 불행하다. 여성의 행복이 국민 전체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때도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부당하게 불행했던 측은 언제나 스스로 파괴할 각오로 되돌아온다.
지구상 대표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1970년대 후반 올로프 팔메 총리는 인권, 민주주의, 성평등을 강조하는 대개혁안을 제시했다. '성평등'을 국가의 주요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노르웨이 사회에서도 "성평등은 석유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총리가 발언했다. 그들은 경제 보다 성평등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성평등이 관건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인가? 행복을 제대로 정의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과 전략을 구현하는 곳이 아닌가. 여성 행복의 지표는 자아의 충일함, 관계의 풍성함이다. 젊은 여성들의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 소위 4B 운동은 고질적인 성적 불평등으로 인한 관계 불능의 좌절에서 비롯된다. 토론만 잘하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이 능력주의만 내세우는 정치인도 필요 없다. 행복을 돌아보시라, 여성들의 행복, 나아가 모두의 행복을 돌아보시라.
김명주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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