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반달리즘과 자정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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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반달리즘과 자정능력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4-0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연은 생물학적 복원 능력, 스스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정능력(自淨能力)이다. 물과 공기 등 자연 생태계 전반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오염 물질이 자정능력을 넘어서거나, 자정능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하게 된다. 인간입장에서 보면 재앙이다. 때문에 인위적 해결을 도모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사고도, 해법도 자정능력의 일환 아닐까?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에도 자정능력이 있을까? 모든 문화유산이 보전되지는 않는다. 보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땅히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새로운 문화의 설자리가 생긴다. 무언가 남기려 애쓰지만, 남기고 싶다고 남는 것이 아니다. 없애려 한다 하여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러함에도 문화유산의 소중함, 보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인위적으로 없애는 것을 질타한다. 야만적이라 한다. 과연 야만적일까? 문화 자체가 인위의 흔적 아닌가?

모든 문화가 전승되지는 않는다. 부단히 생멸한다. 문화유산이라 함은 후손에게 계승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이다. 공통의 관심사이다. 따라서 문화유산 파괴는 시공을 초월한 공동의 가치를 파괴하는 일이다. 때문에 야만적 행위로 간주되고, 인문학의 적이요 인류의 적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파괴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맹목과 무지에서 나오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례들을 모아 보았다.

중국 최초로 통일국가를 수립한 진나라 31대 왕 진시황(秦始皇), 중앙집권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무리한 토목공사와 폭정으로도 유명하다. 신하의 충언을, 옛것으로 현세를 비판하는 불편부당으로 보아, 의약·복서·농사에 관한 서적만 남기고 많은 서적을 불태워 버렸다. 비판세력을 무참히 탄압하다, 이듬해 유생 수백 명을 생매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그 결과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로 풍성했던 인문학이 사라졌다.



고대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브루투스, 너마저" 등 많은 일화를 남긴 장군이다. 독재관이 되어 전권을 손에 쥐었으나, 고대 이집트를 비롯해 근동의 정신적 유산을 보존해 왔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웠다.

김정락 저 <미술의 불복종>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에서도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파라오 기념 조상, 벽화, 비문을 파괴하였다. 비문, 명문에 새겨진 황제 이름을 도려내거나 부수기도 했다.

로마는 그를 정복한 야만 민족에게 무수히 파괴되었으며, 이에 만들어진 용어가 반달리즘(Vandalism,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5세기 초 로마를 침략하여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한 반달족 활동에서 유래, 문화유적을 파괴하거나 약탈하는 행위)이다. 사회적 파괴 행위이다. 종교, 이데올로기에 함몰하거나 체계화 되면 도상 혹은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으로 발전, 걷잡을 수 없는 파괴를 부른다. 중세에는 십자군에 의해 이슬람과 비잔틴 문화가 파손되고, 이슬람 역시 파괴에 가담했다.

1966년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으로 건물, 공예, 서적 등의 역사, 문화유적과 전통유산이 '구시대적 산물'로 간주되어 파괴되었다. 전통문화의 지위 역시 크게 손상되고 위상이 약화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하는 모든 종교에 박해를 가했다. 제국주의의 첩자, 주구(走狗), 수정주의자로 몰린 사람은 폭행, 감금, 강간, 고문 하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당시 중국 법원에 의하면 혁명 기간에 729,511명이 박해를 받았고 3만4800명이 죽었다고 한다. 중국 사회 특성상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형상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 때도 주장된 것이다. 많은 미술품, 문화재가 파손되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역시 같은 연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바미안 고대 불상을 폭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외침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고 파손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고 불 질렀으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각종 문화유산 파괴는 물론, 한민족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언어말살도 꾀했으며 황국신민, 동조동근론, 내선일체 등으로 일본정신을 강요하였다.

6.25전쟁 역시 우리에게 엄청난 재해를 안겨 주었다. 피아 합쳐 오백여 만 내외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천만 이산가족, 수백만의 전재민이 양산되었다. 거기에 따른 문화유산, 주택, 산업시설, 교통망 파손이 어마어마했다.

전쟁뿐이 아니다. 이데올로기, 종교 갈등이 문화파괴로 도출되기도 한다. 단군상 파괴나 사찰의 불상과 불화를 훼손하는 극단적인 행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집단의식에 반하는 행위, 그것이 반달리즘 아닐까? 당연히 지탄 대상이 된다. 파괴의 역사는 창조의 역사에 버금가는 중대사건이다. 자연의 순리인 생성과 소멸로 볼 수도 있을까? 소멸한 만큼 재생산 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의 관심사요, 연구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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