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응노를 흠모한 ‘청관재 컬렉션’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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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응노를 흠모한 ‘청관재 컬렉션’ 들여다보기

  • 승인 2022-03-31 15:34
  • 수정 2022-03-31 16:51
  • 신문게재 2022-04-01 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20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부단히 노력했죠. 대나무, 사군자, 산수화, 문자추상, 동물, 인간시리즈 등 변형을 하되 뿌리가 있는 변화를 꾀했어요."

기업가이자 유명 미술품 수집가인 고 조재진 씨는 고암 이응노 화백을 부지런한 민족미술가로 기억했다.

종이제조·수입회사를 운영하던 조재진은 매주 수요일 서울 인사동 화랑가를 돌며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발휘해 작품들을 사들이며 화랑 주와 작가, 미술인들을 설레게 했던 수집가였다.

그는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응노, 김환기, 이상범, 변관식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청계산과 관악산 사이의 집이라는 의미의 '청관재'는 조재진(2007년 작고)과 그의 아내 박경임이 소장한 미술품 컬렉션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응노미술관에서 4월 10일까지 선보이는 '안목(眼目): 청관재 이응노 컬렉션'은 이응노의 화업을 이루는 전 시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을 비롯해 해방 전후 혼란기, 한국전쟁과 1958년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의 작품 등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와 기법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전시 홍보물에 대표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 1950년대 작품 '취야'와 1940년 이응노가 좋아했던 풍경을 담은 '공주산성', 1945년 해방을 기념하며 이듬해에 그린 '3.1운동' 등 청관재 컬렉션의 주요 작품들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청관재=공주산성
'공주산성'(1940), 종이에 수묵담채, 35×49.7cm, 이응노미술관 소장.
▲'공주산성'(1940) =1936년 말 일본으로 유학 간 이응노는 일본화뿐만 아니라 도쿄의 혼고(本鄕) 양화연구소에서 서양화를 배우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했다. 서양화의 풍경화처럼 주변의 경치를 스케치하며 원근법과 사실적인 묘사방법을 익히며 점차 맑고 담백한 색채, 경쾌한 붓놀림이 두드러지는 풍경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 중에도 수시로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 즐긴 이응노는 홍성과 예산, 공주, 대전 등 충남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그 가운데 공주산성을 그린 작품이 여러 점 남아있으며, 이응노가 좋아한 풍경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공주산성'은 그림의 왼쪽 아래에 '경진년(庚辰年) 동일(冬日)'이라고 쓰여 있어 1940년 겨울에 그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앙상한 가지와 메마른 낙엽들, 차분한 먹빛으로 그려진 산줄기가 마치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가라앉은 겨울 산 느낌을 잘 보여준다.

청관재=3.1운동
'3·1운동'(1946) 종이에 수묵담채, 50×61cm, 청관재 소장.
▲'3.1운동'(1946년경)=1945년 이후 이응노 그림에는 부쩍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해방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3.1운동에 참여한 대규모 시위행렬과 이를 진압하는 일본 경찰이 대표적인 예다. 마치 이응노가 이 인물풍경화를 통해 민족이 해방되었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대한독립'이라고 쓰인 태극기와 깃발을 들고 환희에 찬 표정으로 사방을 향해 만세를 외치는 군중의 모습은 3.1운동뿐만 아니라 해방의 기쁨에 춤추는 모습과도 겹친다. '3.1운동'은 해방을 맞이한 이듬해인 1946년 3.1절을 기념해 그린 작품으로 추정되며 해방의 기쁨과 민족의 역동성, 밝은 미래에 대한 이응노의 믿음이 담겼다.

청관재=취야
'취야'(195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40.3×55.3, 이응노미술관 소장.
▲'취야'(1950년대)=두 사람이 선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직원들이 보인다. '취야'를 주제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긴 이응노는 자신의 자전적인 그림임을 언급하며 "그 무렵 자포자기 생활을 하는 동안 보았던 밤 시장의 풍경과 생존경쟁을 해야만 하는 서민들의 체취가 정말로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청관재=구성
'구성'(1975), 모직에 채색, 135×114cm, 청관재 소장
▲'구성'(1975)=이응노는 1970년대부터 다양한 고대문자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비롯해 아프리카 원시 문자, 중국의 고대 갑골문자와 한자, 아랍 문자에 한글까지 세계의 다양한 문자들이 작품 속에서 결합하고 혼재하며 여러 형상으로 재창조됐다. 문자-기호의 뜻과는 상관없이 순수한 화면 구성요소로써 존재하는가 하면,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예도 있다. 이응노 문자를 이용한 자신의 작품을 '서예적 추상'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그의 작품은 재료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솜, 양털, 융, 부직포, 삼베, 모직 등을 사용했으며, 마치 벽에 거는 양탄자와 같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모로 짠 직물 위에 그린 '구성'은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 먹의 대조가 눈길을 끌며 장식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청관재=군상
'군상'(1986), 종이에 수묵담채, 34×49cm, 이응노미술관 소장.
▲'군상'(1986)=화면을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눠 각각 다른 인간상을 분리해 보여준다. 하단부에는 1950년대 이응노의 작품에 등장한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면, 상단부에는 1980년대 이응노의 '군상' 시리즈에서 보이는 간결하게 기호화된 군상을 검붉은 색으로 표현됐다. 1950년대 풍속화와 1980년대 군상과 같은 시기적으로 다른 작품 경향을 한 화폭 안에 어우러져 구성한 것이 흥미롭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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