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이자 유명 미술품 수집가인 고 조재진 씨는 고암 이응노 화백을 부지런한 민족미술가로 기억했다.
종이제조·수입회사를 운영하던 조재진은 매주 수요일 서울 인사동 화랑가를 돌며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발휘해 작품들을 사들이며 화랑 주와 작가, 미술인들을 설레게 했던 수집가였다.
그는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응노, 김환기, 이상범, 변관식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청계산과 관악산 사이의 집이라는 의미의 '청관재'는 조재진(2007년 작고)과 그의 아내 박경임이 소장한 미술품 컬렉션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응노미술관에서 4월 10일까지 선보이는 '안목(眼目): 청관재 이응노 컬렉션'은 이응노의 화업을 이루는 전 시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을 비롯해 해방 전후 혼란기, 한국전쟁과 1958년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의 작품 등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와 기법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전시 홍보물에 대표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 1950년대 작품 '취야'와 1940년 이응노가 좋아했던 풍경을 담은 '공주산성', 1945년 해방을 기념하며 이듬해에 그린 '3.1운동' 등 청관재 컬렉션의 주요 작품들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공주산성'(1940), 종이에 수묵담채, 35×49.7cm, 이응노미술관 소장. |
일본 유학 중에도 수시로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 즐긴 이응노는 홍성과 예산, 공주, 대전 등 충남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그 가운데 공주산성을 그린 작품이 여러 점 남아있으며, 이응노가 좋아한 풍경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공주산성'은 그림의 왼쪽 아래에 '경진년(庚辰年) 동일(冬日)'이라고 쓰여 있어 1940년 겨울에 그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앙상한 가지와 메마른 낙엽들, 차분한 먹빛으로 그려진 산줄기가 마치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가라앉은 겨울 산 느낌을 잘 보여준다.
'3·1운동'(1946) 종이에 수묵담채, 50×61cm, 청관재 소장. |
'취야'(195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40.3×55.3, 이응노미술관 소장. |
'구성'(1975), 모직에 채색, 135×114cm, 청관재 소장 |
1970년대 그의 작품은 재료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솜, 양털, 융, 부직포, 삼베, 모직 등을 사용했으며, 마치 벽에 거는 양탄자와 같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모로 짠 직물 위에 그린 '구성'은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 먹의 대조가 눈길을 끌며 장식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군상'(1986), 종이에 수묵담채, 34×49cm, 이응노미술관 소장. |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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