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향한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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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향한 고언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3-28 08:29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교수
손종학 교수
필자는 한참 오래전 판사로 근무하면서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직을 맡아 선거관리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조인 생활을 접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선거관리 봉사를 하여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별 망설임 없이 약 10여 년간 지역 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선거인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 달도 남겨 놓지 않은 1월에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사직하였다. 평상시도 아니고 막중한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 서둘러 사직하는 것은 결코 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도 있기에 필자 스스로 망설이기도 하였고, 주위에서도 만류하였지만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고, 또 단박에 결정한 것이 아닌, 나름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선거관리위원으로 봉사한다는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가장 큰 덕목은 정파를 떠나 업무를 수행한다는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이것이 무너질 때, 국민이 중립성을 의심할 때 선거관리위원회는 존재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사라지기에 그렇다. 업무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있어서 법관의 그것에 비할 자리가 없겠지만 어쩌면 선거관리 업무야말로 법관의 그것에 견주어 결코 가볍지 않는,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국가 업무다. 왜냐고? 우리가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우리는 부정선거로 인해 현직 대통령이 하야하고 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는 아픈 역사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후보 시절 캠프에 이름을 올렸는지 여부로 논쟁의 중심에 선 자를 선거관리업무의 최종 결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에 임명했을 때 필자는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어떤 자리인가? 비상임으로 선거관리업무에 매진할 수 없는 위원장을 대신해 사실상 선거 업무를 총괄하고 최종 유권해석을 내리는 자리가 아닌가? 그런 자리에 중립성 시비에 걸린 자를 임명한다는 것은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 후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렸던 여러 유권해석은 법조인이자 선거관리위원인 필자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진짜 성난 불은 상임위원의 임기를 마친 자를 다시 일반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하려는 시도였다. 아무리 임명하고 싶은 자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을진대.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상임위원의 임기를 마친 자를 다시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해 실권을 더 유지·행사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지막 희망을 스스로 접었다.

이것이 비록 말단 직책이지만 필자가 도중에 사직서를 제출한 진짜 이유다. 다행히 그로부터 며칠 후 그동안 묵묵히 업무에 종사해온 전국의 선관위 직원들이 반대성명을 내고 당사자가 사표를 내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사태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사전선거 관리를 둘러싼 여러 잡음과 시빗거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 와중에 취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은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위원장도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국민의 분노를 더욱 열심히 잘하라는 뜻이라고 일방적으로 해석하고는 계속 위원장 직분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처사이다.

답은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당장 직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두 달여 남겨진 지방선거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위원장 직분을 내려놓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선거 후 바로 사임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무너진 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요,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이다. 마음 무겁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고언이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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