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필자는 법조인으로서, 법률서비스 분야에서의 AI 미래상을 생각해보았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AI 판사가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사람 판사에게 불신이 깊어지면 세상의 모든 법률지식을 탑재한 AI 판사를 개발해서,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기계적 판결을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또, 조만간 AI 변호사도 등장한다면 사람인 나는 AI 변호사에게 대체가 될 것인가 잠시 혼자서 때 이른 근심을 하기도 했다. 길어야 10년 이내에 사람 변호사는 AI 변호사의 보조를 받지 않으면 업무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없어질지도 모르고, 그 뒤에는 또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AI와 어떻게 경쟁을 해야 하나, AI 시대에 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나, 혼자서 가볍게 생각을 펼쳐보는 것이지만, 뜻밖에도 이것은 지금 내가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에 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변호사를 찾고 생면부지의 변호사에게 자기 인생이 걸린 문제를 맡기는가. 단지 법률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찾아오는 것인가. 만일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법률지식이라면 장차 AI 변호사는 사람 변호사를 성공적으로 대체할 것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법률서비스란 대체 무엇인가. 쉽게 예를 들어 보자. 이혼 사건들을 하다 보면, 시대가 많이 변하면서 요즘은 웬만큼 혼인 기간이 길었던 부부의 경우 재산분할이 50대 50으로 판결이 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변호사가 아무리 뭘 열심히 한다고 해봐야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무엇을 제공한 것인가?
물론 50대 50이라는 판결을 얻어낼 때까지의 과정이 험난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50대 50이 나오는 것 역시 아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이 소송이라는 터널을 지나려면 여간 골치 아픈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고, 거기다 무지가 주는 불안은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법률서비스란 그 험난한 과정을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융단을 깔아주고 좋은 신을 신겨주고 좋은 차에 태워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게 정답이라 생각하고 나의 멘토 선생님에게 그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그것은 변호사로서 자신감이 없는 소리라고 했다. 결국엔 50대 50이 될 텐데, 가는 길이 힘들지 않도록 도와드리겠다 하면 과연 얼마의 사람들이 의뢰할까. 높은 보수를 지불하는 이유가, 그 가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법률지식은 이미 인터넷에 넘쳐나고 그것은 손쉽게 얻어지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굳이 힘들게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에게 변호사가 궁극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법률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가지고 도출해낸 해답을 뛰어넘는 통찰력, 그리고 기꺼이 의뢰인의 인생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변호사를 찾는 진짜 중요한 이유라고 믿는다. 전문가로서 제공하는 것은, 사건의 본인이 가지는 사고의 한계, 그리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에너지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즉 통찰력과 열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찰력과 열정은, AI는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바로 그 무언가이다. 이것들이 있을 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탱할 수 있고, 이것은 AI 시대에 우리가 외딴 섬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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