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중에 씨름도 있었다. 정말 힘이 좋고 경험 많은 학생도 눈에 띈다. 몇 번 이겨서 수차 예선을 통과한 적이 있다. 그를 본 친구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며 씨름 선수라고 추켜세운다. 약간의 운동 경험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예체능 모두 훈련과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가 아닌 바에는 모름지기 즐기기 위한 것이다.
스포츠화 된 현대 씨름과 다르겠지만, 우리 씨름은 그림이나 문헌을 통해 한결같이 민족 고유의 신체운동임을 말해준다.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짐승을 상대하거나 생존을 위해 무예로 발달했다고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체력·기술·투지가 모두 좋아야 한다. 판단력, 균형감각, 인내심, 안전성, 사회성을 길러준다. 단오에 많이 행해졌지만, 정월보름, 삼짇날, 초파일, 백중, 한가위, 중양절 등 명절이나 난장 등에서 수시로 행해졌다. 씨름꾼뿐만 아니라 신분 구분 없는 만인의 잔치였다.
원형구도를 사용했는데,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 구도이다. 정선(鄭?)의 <금강전도(金剛全圖)>, 김홍도의 다른 그림 <무동(舞童)>, <서당(書堂)>, <서화감상(書?鑑賞)> 등에 보일 뿐이다. 역동적인 씨름 장면을 가운데에 배치했지만, 구도가 주는 부드러운 동세가 화폭을 생동감 있게 이끈다. 가운데로 시선이 모이도록 도와준다. 김홍도의 여느 그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복색과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시 의상 및 민속, 정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금은 왼씨름만 통일하여 하고 있지만, 오른씨름, 띠씨름, 바씨름, 허리씨름, 통씨름 등 종류가 다양하였다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씨름은 사라진 '바씨름'이다. 상대 왼쪽 허벅다리 샅바를 왼손으로 감아쥐고, 왼손은 상대 허리를 감싼 채 하는 경기다. 허리샅바가 없다. 선수 신분이 각기 다를까, 벗어 놓은 신발이 서로 다르다. 모두가 더불어 즐겼다는 표시일 것이다.
씨름이 절정에 다다랐다. 눈을 뗄 수 없는 심각한 상태이다.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 앞쪽 씨름꾼이 상대를 들어 올렸다. 상대가 이 악물고 무릎을 맞댄 채 버티고 있지만, 던지기만 하면 된다. 구경꾼이 먼저 알고 있을까? 우하에 있는 두 사람이 놀라며 급히 몸을 피하고 있다. 다른 쪽 구경꾼은 경탄하기도 하고 희희낙락하기도 한다. 몸이 한편으로 쏠리기도 한다. 응원하는 사람이 지고 있을까 무덤덤한 사람도 있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다. 뜯어보면, 시선처리며 반응 동작이 재미를 더한다. 같은 표정, 동일한 자세는 없다.
원근감을 두지 않아 전후 인물 크기가 동일하다. 화면을 사등분하여 보면 좌상에 8, 좌하에 5, 우상에 5, 우하에 2명을 배치하였다. 대각선의 합이 모두 12이다. 이를 마방진(이방진)이라 하여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동일한 숫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인다. 위쪽에 월등하게 많은 인물이 배치되어 있어 무게 중심이 위에 있다. 우리 모르게 역동성이 더해진다.
엿 파는 아이는 씨름의 승패에는 관심이 없다. 장사에 열중이다. 화폭 밖에도 많은 사람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이의 반대편은 비워 두었다. 이 역시 무한한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세히 새겨보다 보니 우하 앞쪽 구경꾼 양손이 반대로 되어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자세이다. 이 그림뿐이 아니다. <무동> 그림에서는 해금 연주자의 손가락 방향이 반대로 되어있다. <활쏘기>에는 팔과 다리의 자세가 엇갈리게 되어 있다. 습관적으로 그리다 보니 그러한 것일까? 모종의 풍자가 숨어 있을까? 무언가 있다 싶기는 한데 알 수가 없다. 연구할 것이 많다. 작가가 숨겨둔 것도 많고, 의미도 다양하다.
씨름은 겨루기를 의미한다. 팔씨름도 하고 말씨름(입씨름)도 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도 입씨름이 난무한다. 지겨울 정도다. 입은 전투하는 곳이 아니다. 잠시잠깐 즐기는 것 정도는 몰라도 상시적으로 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먹기만 하는 곳도 아니다. 더구나 화를 부르는 문이 되면 안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이해하려 노력하자. 사랑을 나누고 정을 교류하는 창구다. 다정한 말, 사람이 넘치는 말, 고운 말이 얼마나 많은가? 선의의 입씨름, 사랑의 입씨름을 하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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