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고등학생 한지우는 현실에 아버지도, 스승도 없습니다. 탈북 수학자 이학성은 아들과 제자가 없습니다. 서 있는 곳은 역사와 전통, 시설, 명성, 학생들의 실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문고등학교지만 이 두 사람은 그저 가난한 주변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영화는 그들을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그들은 부를 얻지도 못하고, 신분이 상승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억울한 오해가 풀릴 뿐입니다. 영화가 두 사람의 판타지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인간다움을 상실한 교육의 현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는 아마도 인류가 이어 온 가장 오랜 관계의 형식일 것입니다. 가치의 전수(敎)와 낳아 기르고 키우는(育) 일이야말로 세대와 세대에 걸친 인간 존재의 본질이고, 그 핵심은 바로 인간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런 본질과 핵심을 상실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판타지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통렬히 깨우칩니다. 리만의 가설을 풀어낸 천재 수학자가 하필 탈북자가 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영재들이 모인 고등학교의 경비가 되고, 그에게 밤마다 수학을 배운 학생이 두어 달 만에 성적이 몰라보게 좋아질 개연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영화가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지점은 아버지와 참된 스승이 없는 아이가 아들과 연구하고 가르칠 곳을 잃어버린 어른을 만나 그려내는 참된 인간다움이 아닐까 합니다.
예리한 문제의식과 주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깊은 울림과 완성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한지우와 이학성이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몰개성적 전형성에 갇혀 있습니다. 탈북과 남북관계, 학교 교육의 현실 역시 구조적 통찰이 아니라 피상적 접근에 그치고 있습니다. 내러티브의 전개 또한 과도히 생략되고 편집되어 헐겁습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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