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실과 진실, 정선의 인왕제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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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실과 진실, 정선의 인왕제색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3-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가 추구하는 선에 진리, 진실이 있다. 반대편에 거짓이 있고, 허구도 있다. 가시적인 영역과 추상적인 영역이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사실이 있고 상상이 있다. 현상이면에 정신세계도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림 공부할 때 리얼리즘에 대한 강의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말로 풀어 쓸 때 사실주의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본말을 거쳐 우리말로 바뀌다 보니 오독 되었다는 것이다. 비판의식을 없애려는 일본의 술수라 했다. 진실주의로 해야 맞는다는 주장이었다. 사실과 진실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무엇이 다를까? 사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가상에 대비되는 말이 사실이고, 거짓 없이 바르고 참된 것이 진실이다. 사실에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더해서 진실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리 또한 마찬가지다. 허위에 반대되는 말이다. 중세 때 진리에 대한 정의 '사고와 존재의 합치'가 더 쉽게 이해된다. 실존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이다. 만민의 합의, 유효성을 들기도 한다.

서양에서 리얼리즘의 선구로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06.10. ~ 1877.12.31. 프랑스 화가)가 말했다. "나는 천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자신이 경험하고 인지한 것들만 그리겠다는 것이다. 가감 없는 사실 묘사로 현실 너머에 있는 진실은 감상자 몫으로 남겼다. 낭만주의가 추구하던 자유와 현실 비판은 지속되었다. 그런 연유로 미술사학자들은 '사회적사실주의' 또는 '비판적사실주의'라 정의하기도 한다. 헤겔은 "진정한 리얼리티는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대상과 직접적인 감각 너머에 있다."라며, 예술가는 한층 고차원적인 리얼리티, 보다 본질적인 진실을 표현한다고 했다.



사물은 보는 시각과 인식의 방법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전하고자하는 메시지 또한 숨겨져 있다. 문자, 용어 또한 다르지 않다. 어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랴. 집단 정서에 따라 인식방법이나 언어습관이 다르다. 서로 다른 언어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 단어는 많이 보지 못했다.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 하는 문제는 남겠지만, 서로 다르다고 나물할 일은 아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 의식세계가 더욱 확대되기 때문이다. 세상사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신조어가 수없이 탄생한다. 진위여부를 떠나 반복 사용되다 보면 고착된다. 실정이 그렇다 보니 생뚱맞은 것도 많다. 우리 미술사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말이 있다. 창시자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라 배운다. 젊어서부터 화업에 종사했음은 알 수 있으나, 화원이었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뛰어난 재주 때문에 관료로 추천되었다고 전한다. 화가로서는 드물게 1756년 가선대부 지중추부사(嘉善大夫知中樞府事)라는 종2품에 제수된다.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정선, 1751년. 국보(1984.08.06.). 지본 수묵담채. 79.2㎝ × 138.2㎝. 리움미술관 소장.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감상해보자. 인왕산 아래 태어나 그 부근에 살았던 정선이 초여름 비가 갠 인왕산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체적으로 정선이 진경산수라는 장르를 창시, 개척, 완성한 인물이라고 한다. 동원 가능한 미사여구를 망라하여 칭송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의 고유색, 고유화법, 고유의 회화미라고 찬양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고유하다는 것은 비교적 오랫동안 이어져온 우리의 것을 의미한다. 창시했다면서 고유한 정체성이 모두 동원된다. 김병헌 연구위원(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바 있다.

실경을 소재로 사용하기 전에는 관념적으로 그렸다. 상상속의 산수 또는 이상향이 소재였다. 관념 산수이다. 실재하는 풍경을 그린 실경산수가 등장한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실경, 보이는 것에 사의를 더한 것을 진경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진경을 극사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작품 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작품에는 소재와 관계없이 모두 사의가 포함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경을 그린 화가도 수없이 많고, 뛰어난 실경 작품도 많다.

김병헌은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를 창시한 적이 없다"며 "조선 후기 문인이자 화가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 화가, 문관)이 겸재의 그림을 보고 '동국진경(東國眞景)'이라는 찬사를 남겼는데, 여기에서 '진경'이라는 두 글자를 차용하여 진경산수, 동국진경, 진경시대 등으로 사용하면서 학술용어로 굳어졌다"고 주장한다.

"정선에게 진경문화의 주도자요, 개척자, 창시자, 시조라는 허울을 씌워 그를 추앙하면 미술사가 심각한 왜곡의 늪에 빠져든다"며 "진경산수라는 용어를 기존에 쓰던 실경산수로, 진경산수화풍이나 진경산수화법은 겸재산수화풍과 겸재산수화법으로 바꾸면 간단히 정리된다"는 주장이다.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화두로 삼아보자. 진리라 믿었던 것도 아닌 경우가 많고, 변화하기도 한다. 미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허다하다. 생각이 다르다고 다투지 말자. 다른 생각을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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