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좋아하고, 존경하는 두 분을 만나는 날이다.
아침부터 너무나 설레였던지 새 옷을 꺼내 입고서 텍도 안 떼고 멋을 잔뜩 내고서 출근을 했다. 마침 사장님께서 오미크론 확산도 심하고, 날씨도 흐리니 조기 퇴근 하라고 하셔서 참 복지가 좋은 회사라는 걸 새삼 느끼며 퇴근하였다.
예부터 좋은 만남이란 퇴계와 율곡의 만남 같은 그런 만남이 좋은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을 논하고 시(詩)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만남이기에 그런 것이다.
물론 부처님과 가섭의 만남도 있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좋은 만남도 있으며, 괴테와 실러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만남에는 영혼의 교류가 일어나고, 정신적인 충족감이 생기며, 종교의 혁명이 일어나고, 학문과 예술의 꽃이 핀다. 이런 만남이 지극히 행복한 만남인 것이다.
퇴계와 율곡이 시를 주고 받은 만남을 보자.
이이 이율곡은 예안(禮安) 도산(陶山)에 가서 퇴계 이황(李)선생을 찾아뵈었다.
이때 율곡 선생은 성주(星州)에서 강릉 가는 길에 찾아뵙고 8행으로 된 율시(律詩) 한 편을 지어 드렸는데 다음과 같다.
시내는 수사파(洙泗派)에서 나누어졌고, 溪分洙泗派(계분수사파)
봉우리는 무이산(武夷山)처럼 빼어났네. 峯秀武夷山(봉수무이산)
살아가는 계획은 천 권쯤 되는 경전이고, 活計經千卷(활계경천권)
거처하는 방편은 두어 칸 집뿐이로구나. 生涯屋數間(생애옥수간)
마음은 제월(霽月) 보다 더 깨끗하고, 襟懷開霽月(금회개제월)
말씀과 웃음은 광란(狂瀾)을 안정시킨다. 談笑止狂瀾(담소지광란)
소자(小子)는 도(道)를 듣고 싶어 찾아왔지, 小子求聞道(소자구문도)
한가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非偸半日閒(비투반일한)
퇴계 이황 선생도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나는 문 닫고 누워 봄이 온줄 몰랐는데,
그대가 와서 이야기하자 마음이 상쾌하구나.
이름난 선비 헛소문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건만,
전부터 나는 몸가짐도 제대로 못한 것이 부끄럽다.
아름다운 곡식에는 강아지풀 용납할 수 없고,
갈고 닦은 거울에는 티끌도 침범할 수 없지.
실정에 지나친 말은 다들 깎아 버리고,
공부하는데 각자 더욱 힘쓰세.
病我牢關不見春(병아뢰간불견춘)
公來披豁醒心神(공래피활성심신)
始知名下無虛士(시지명하무허사)
堪愧年前闕敬身(감괴연전궐경신)
嘉穀莫容?熟美(가곡막용제숙미)
遊塵不許鏡磨新(유진불허경마신)
過情詩語須刪去(과정시어수산거)
努力功夫各自親(노력공부각자친)
퇴계가 조 사경 목(趙士敬穆:사경은 자, 목은 이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아무가 찾아왔는데 그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우며 지식과 견문도 많고 또 우리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전성(前聖:공자)의 말이 참으로 나를 속이지 않았다. 그가 사장(詞章)을 너무 숭상한다는 소문을 일찍이 들었기에 조금 억제하려고 시(詩)를 짓지 말도록 하였다. 떠나가던 날 아침에는 마침 눈이 내렸기에 시험 삼아 시를 지으라고 했더니, 옛날 의마지재(倚馬之才)처럼 즉석에서 두어 편의 시를 지었다. 이 시를 평가한다면 그 사람만 못하다. 그러나 역시 볼만 하다" 라고 하였다.
나도 오늘 스승을 만나러 간다. 오늘 만남에는 미영 언니가 함께하기로 돼 있다. 따라서 오늘 만나는 두 분의 약속시간을 앞당겨서 만나러 가야겠기에 발걸음이 더욱더 가볍기만 하다.
형파 김용복 선생님은 유명 인사나 다름없으신 분이다. 대흥동 우리들공원근처에 있는 커피솝이 만남의 약속 장소였다. 선생님은 먼저와 계셨다. 거기엔 박성효 전 대전시장님도 와서 계셨고 유명 인사들 십여 분이 환담을 하고 계셨다.
덕분에 박성효 대전 전 시장님도 뵐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간이 되었는데 박 시장님은 먼저 가시면서 "김용복 선생님께 사랑으로 섬겨 드리세요~ "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선생님께선 지역 유명 인사분들과 친분도 두터우시고, 또한 그분들이 존경하신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하루였다.
삶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 선생님을 뵈면 지친 마음이 살아 숨 쉬게 되는 느낌을 갖는다.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함께 만난 미영 언니는 직장에서 알게 되어 지금까지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고마운 언니다. 나 때문에 선생님을 알게 된 미영 언니는 벌써부터 시를 써서 언론에 발표하는 영광을 얻었다.
우린 서로 마음이 잘 통하기에 오래되진 않았지만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복은 인복이라는데 난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미영 언니는 새옷에 붙은 텍을 떼어주며 "얼마나 급했기에 텍도 떼지 않고 옷을 입고 나왔냐며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적어 내게 건넸다.
옷 텍을 꼬리표처럼 달고 왔는가?
김미영 (22. 3. 12)
만개한 꽃향기를 흩뿌린 듯
옷 태의 부 내를 폴폴 풍기며
예사롭지 않은 발 걸음으로
손사래를 흔들며 다가온다.
비범을 숨기고 여기 왔노라!
여유로운 그녀의 고운 자태
여자는 인사가 외모 칭찬인지라
살 보태니 환한 웃음꽃이 피더라
창가에 자리 잡아 겉옷을 벗으며
"언니 옷 텍 좀 떼어 주세요~~" ^^
행복한 하루였다.
많은 만남 중에서 진실한 만남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평생 몇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 뿐이다. 형파 선생님은 우리보고 잡은 손 놓지 말고 함께 가자 하셨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이다. 마음이 이토록 설레일 수가 없었다.
박현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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