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한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
또 다른 사례는 서울의 모 구청 공무원이 주식 투자를 위해 115억 상당의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다. 총 236회에 걸쳐 하루 최대 5억 원의 구청 계좌 돈을 개인 계좌로 송금했다. 여기에도 구청 명의의 위조 공문이 동원됐다. 위조공문을 서울주택도시공사에 보내 출금할 수 없는 기금 관리용 계좌 대신 자신이 관리하는 구청 명의 계좌로 납입금을 받는다든지 은행에 보내 공금 계좌의 하루 이체 한도를 1억에서 5억 원으로 늘렸다고 한다.
도대체 회사나 구청에는 횡령방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던 것일까? 이 직원들은 평소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부정(不正)으로 달려가는 보통사람들의 범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필자가 징계위원회에 참가할 때 자주 드는 생각이다. 징계는 응징과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범죄가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동기화된 범죄자, 매력적인 대상, 감시체제의 부재라는 부정의 삼각형이 존재한다. 이에 적용하여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부정행위와 관련하여 범죄자의 변명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언짢은 일이 있어서', '업무가 벅차서', '바보 취급당하는 걸 보복하고 싶어서' 등이다. 이러한 거짓말에 대해 아무런 인사조처 없이 끝나버리는 것은 위험한 대응이다. 특히 횡령에서 위조하는 행위나 거짓말로 변명하는 행위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가 '우리는 직원들을 믿는다'라고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업무처리가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 그런데 공과 사를 막론하고 많은 부정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부정은 반드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즉 부정행위자는 관리가 느슨한 환경을 택한다. 애초 횡령 의지가 있는 자 즉, 강하게 동기화된 범죄자보다 상황 조건이 충족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에 손대는 보통사람들이 더 방지하기 어렵다. 전자는 다른 경로를 통해 사전에 걸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매우 극단적인 것들이다. 대규모 횡령이라면 언론에 노출되기 쉽고 당연히 형사처벌의 절차를 밟겠지만 비교적 작은 횡령행위는 피해액 보전이 되면 그냥 내부징계나 퇴사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관은 내부의 치부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범행을 저지른 자는 보통 장기간 근무하였고 집안 사정이 딱하다는 동정심이 작동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횡령 사건이 암수(暗數)범죄로 통계에 잡히지 않게 되고 무난하게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 또 횡령의 길을 밟는 것이 가능한 원인이다.
횡령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지위에 있어도 착오나 부정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매뉴얼의 작성, 반드시 1인 이상의 감시자를 두는 것이 예방의 첫걸음이고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보다 상황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