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소장 |
UN 아동권리위원회는 2001년 발표한 일반논평 제1호(교육의 목적)에서 이를 천명했다. 이와 더불어 아동권리위원회는 교육은 아동 중심적이고 아동 우호적이며 아동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한 UN의 인권조약기구가 당연한 말을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 많은 국가의 아동이 학교 내에서 인권을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 향상과 더불어 학생에 대한 체벌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학생의 자치와 참여 및 의견을 표명할 권리는 기회와 경험의 확대를 거치며 조금씩 증진됐다.
초중등교육법은 2007년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할 학교의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이 신설됐고 202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두발·복장 등 용모, 교육 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등에 관한 사항이 학교규칙의 기재사항에서 삭제됐다. 최근에는 학생의 인권보장을 명시하고 학생 인권 침해행위의 금지 규정을 신설하며 총학생회와 학생옹호관 설치 및 운영,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대표 참여 등을 법률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학생인권법)이 발의됐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의 향유자이자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또한 학생이 일방적인 규제와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주체로서, 학교의 영역에서도 기본권 행사의 방법을 연습하는 기회를 부여받아야만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학생의 인권은 여전히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학교는 학생의 두발 길이와 모양, 치마 길이, 속옷과 양말 색상, 신발의 색상과 굽 높이, 가방 모양을 학칙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학교에서 학생의 휴대전화를 아침 등교 시 수거하고 하교 시 돌려주고 있다. 어느 학교는 학생회 임원선거 출마자의 공약 및 연설문을 사전 검열하고 실현 가능성, 우려 사항 등을 이유로 내용을 수정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생 권리에 대한 학교의 과도한 제한 조치는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섭받음이 없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할 수 있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과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의 통신 자유와 학생의 자유로운 의견표명권 및 학생 자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동안 경기와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인천 등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른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인권이 제정된 지역의 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적인 체벌, 사전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서약서(동의서) 작성 강요 등을 경험했다는 비율이 다른 지역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대전 인권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대전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반갑고 감사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인식되면서 인격형성과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 권리를 제대로 존중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학교에서 학생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가운데, 학생 중심적이고, 학생 우호적이고 학생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그럴 때 우리는 아동이 학교의 교문을 통과해도 그들의 인권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선언을 현실에서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병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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