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경칩, 잠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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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경칩, 잠에서 깨어나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3-1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연은 순리에 따른다. 식물은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불어올 때, 이미 새봄맞이 준비를 한다. 뿌리는 가장 늦게 생명 활동을 멈추고, 가장 먼저 깨어난다. 어느새 경칩(驚蟄)이 지났다. 경칩은 숨어있던 것들이 놀란다는 말 아닌가? 이 무렵이면 천둥이 쳤던 모양이다. 천둥소리에 겨울잠 자던 생물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말이다. 나라가 그리 크지 않으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 동네는 우수 무렵에 깨어난다. 날짐승은 짝짓기에 부산하고, 꽃나무는 꽃망울을 한껏 부풀린다. 겨우내 준비했던 한해살이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가슴이 벅차다.

경칩이면 집안 구석구석 청소도 하고, 쓰레기를 모아 태우기도 했다. 연기를 내어 겨우내 함께 살던 뱀이며 벌레들을 집밖으로 내쫒는다. 불운을 쫓아낸다고도 생각했다. 속병에 좋다고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개구리나 도롱뇽 알이 건강에 좋다 하여 찾아 먹는 풍습도 있었다. 농기구 손질하고 밭 갈며, 본격적인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이 <농가월령가>에 잘 정리되어있다. 이월령이다.

이월은 중춘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을 안다하며



스무날 음청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에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보쟁기 차려 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밭 가리어서 춘모를 많이 갈고

목화밭 되어두고 제 때를 기다리소

담뱃모와 잇 심기 이를수록 좋으니라

원림을 장점하니 생리를 겸하도다

일분은 과목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치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꺾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장원도 수축하고 개천도 쳐 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 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리니

육축은 못다하나 우마계견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 맞게 캐어 두소

촌가에 기구 없어 값진 약 쓰올소냐



익충이 죽거나, 새싹이 움트다 죽을까봐 밖에서는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였다. 봄 가뭄이 길어졌기 때문일까? 울진, 동해, 삼척 등 동해안이 검은 연기에 덮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로 지금까지 주택 372채, 공장과 창고 161개소 등 모두 650곳의 시설물이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산림 피해 면적은 울진이 1만7418헥타르, 삼척 1253, 강릉 1900, 동해 2100헥타르 등 모두 2만 3천여 헥타르라 한다. 229세대 347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엄청난 피해를 바라만 봐야 하는 무기력함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려니 하지말자. 숲이 돌아오려면 수십 년도 모자란다. 자연이 신과 등치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과학을 잘 모르면 무신론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신의 질서를 만난다."는 말이 있다. 자연을 이기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특정 장소에서 태어나 살다보면, 살고 있는 환경의 선악을 판단하기 어렵다. 세상이 모두 그러려니 하고 자신도 모르게 적응하여 산다. 따라서 감사할 줄도 모른다. 문제의식도 없다. 온대지방은 4계절이 뚜렷하고 쾌적하여 우리가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때때로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지만, 계절의 변화가 생물에게 역동성을 부여한다. 세계적으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도 온대지방이다. 변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고마움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가마솥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대응을 싸우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조화롭게 잘 보전하는 것도, 순리에 따르는 것도 대응이다. 깨어나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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