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들은 여자라서, 가난하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나 가혹한 노동 현장에 놓였습니다. 그들은 이념이나 사상 때문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열망, 사람다운 만남으로 인해 노동자 교실을 애타게 사랑했습니다. 어둡고, 좁고, 먼지 나는 봉제, 피복 공장에서 하루 열다섯 시간씩 일해야 했고, 명절 때는 잠도 자지 않고 미싱을 돌리고, 다리미질해야 했던 그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을 불행하고 어두운 시대의 희생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 시절 찍었던 사진들, 주고받았던 편지들, 그리고 함께했던 기억에 대한 회상을 통해 어려웠지만 꿈과 사랑, 우정을 나누며 고귀하고 존엄하게 살아있던 존재로 보여줍니다. 오프닝 장면의 탁 트인 하늘 밑 언덕에 놓인 미싱을 돌리는 나이 먹은 그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어둡고 좁다란 터널이지만 희망의 빛을 향해 걸어온 어린 시절의 앳된 그들의 시간도 더없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객관성과 따뜻하고 정겨운 감성의 균형을 놀랍도록 잘 유지합니다. 섬세하고 치밀한 연출력 덕분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 옛 노동의 현장을 찾은 주인공들이 좁고 어두운 계단과 복도를 지날 때의 긴장과 팽팽한 공포감 뒤에 설치 미술처럼 놓인 그 시절의 사진들과 만나며 펼쳐지는 환한 빛의 향연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냅니다. 빠른 장면 전환과 편집, 그리고 조명의 사용을 통해 어찌 보면 표현적이기까지 한 연출은 그러나 인물들과 그들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정과 경의로 인해 흔들림 없이 조화롭습니다.
임미경 씨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받은 책 속에 은밀히 적힌 격려와 미안함의 글귀를 회상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검열 통과를 위해 들인 '천국의 열쇠'라는 책 제목과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인간다운 삶과 노동을 위한 투쟁 끝에 갇힌 동료를 향한 뜨거운 위로. 역사는 이들의 값진 희생과 노고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전진했음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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