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노루귀꽃을 바라보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노루귀꽃을 바라보며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 승인 2022-03-09 18:12
  • 신문게재 2022-03-10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김명순(필진)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어쩌다 노루를 만나 걸음을 멈칫하면 노루도 멈칫 서서 낯설다는 눈빛 남기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진다. 쫑긋 세운 귀에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누런 모직 옷에 긴 다리가 짐승 중에 가장 날씬한 몸매다. 짐승 중에 달리기 실력이 가장 빠른 선수일 거다.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기에 나는 당신이 그리운지 모른다. 너의 낯선 눈빛이 내 눈빛 같아서 나는 너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정말 사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우냐? 보기만 하면 잡으려 하고 뭐든지 그냥 놔두지를 않으니 말이지? 총질하고 올무 놓고 못살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우냐? 나는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얼굴을 마주하기도 어렵지만 입을 열어 말 붙이기도 어렵단다. 저 잘난 멋에 사는 게 인생이라 노래 부르며 사는 존재들 속에서 살기가 어려워 내 눈도 너처럼 놀란 눈으로 멍청할 때가 있단다. 너는 눈이라도 크게 뜰 수 있지? 나는 눈도 크게 못 뜨고 살아서 감은 눈인지 뜬 눈인지 모른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네 친구 고라니도 좋아한다. 너희들이 우리 배추밭에 와서 배추 뜯어 먹고 까만 방콕 같은 똥 몇 개 남기고 간 걸 보면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다. 함께 먹고 살려고 내가 여유롭게 배추 모를 심는다. 우리 아내는 너희들이 다녀가면 난리를 친다. "얘네들 또 왔다 갔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요. 울타리를 치자니까요?" 그래도 나는 너희 편이다. "함께 먹고 사는 겨!"라고 답하고 만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이 있다. 이른 봄에 산속 계곡 양지바른 곳에 가서 내가 너의 귀를 만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노루귀' 라는 풀이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 아마 너도 보았을 거야. 이름이 노루이고 너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노루귀라고 부르는가 봐. 아무리 바라봐도 너의 귀를 닮지 않아서 노루귀를 만나러 학하리 빈계산 지나 금수산 계곡을 찾아가지. 키는 작지만 긴 꽃대 끝에 매달린 꽃봉오리가 너의 귀를 닮은 모양이었어. 그리고 꽃이 피었을 때 꽃잎을 자세히 살펴보니 너의 귀를 빼닮았어. 꽃은 흰색으로 피는 것도 있고 분홍색, 하늘색으로 피는 것도 있어. 이른 봄이면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이 노루귀꽃을 찾으러 다니고 있어. 긴 꽃대에는 하얀 털이 나 있는데 얼마나 보드라운지 몰라, 꼭 너의 털처럼 말이야. 햇빛이 꽃대에 닿으면 하얗게 빛나며 골바람에 흔들리는 노루귀 꽃대가 지금도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어.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키가 큰 나무숲 아래 작은 나무숲이 있고 그 아래 풀숲이 있다. 숲속 작은 골짜기 풀숲 아래 키 작은 노루귀가 봄을 열고 있다. 숲은 작은 계곡에 물을 흘려 강의 발원이 되어 바다에 닿아있다. 봄꽃은 노루귀만 있는 게 아니다. 설 중에 눈을 열고 솟아오르는 복수초도 있고 개불알꽃 제비꽃이 피면 복슬복슬 버들강아지 흔들거리고 산동백 노랗게 웃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숲속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계곡마다 풀숲이 기지개를 켜면 산새들 노랫소리 청량하고 짐승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랑놀이 즐거운 계절이 오고 있다. 숲을 지키는 나무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으며 자리를 옮겨 앉지도 않는다. 산새들 노래하는 숲에서 노는 짐승들은 숲을 떠나지 않으며 함께 숲을 지킨다. 어울림의 조화를 이어가는 자연에서 사람이 예외일 수는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거만함으로 숲에 들지 말아야 한다.

자주 숲에 들어 숲속 식구들의 표정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들로부터 편을 가르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의지를 익혀야 한다.

텔레비전 뉴스가 시끄럽고 무섭다. 자연에 기생하며 사는 인간들의 행태가 실망스럽다. 패를 나누어 싸우는 전쟁이 그렇고 하늘을 뚫고 오르는 미사일이 무섭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자행되는 세상이 인류문명의 종착지인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생각이 통하지 않고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사회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며, 자유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되 함께 편안한 평화로운 세상이어야 한다. 정의는 법이 아닌 양심을 지키는 삶이다. 자연은 어머니처럼 사람을 품에 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삼백육십오일 책장을 넘기며 어리석음을 깨우고 있는데….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