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
정말 사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우냐? 보기만 하면 잡으려 하고 뭐든지 그냥 놔두지를 않으니 말이지? 총질하고 올무 놓고 못살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우냐? 나는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얼굴을 마주하기도 어렵지만 입을 열어 말 붙이기도 어렵단다. 저 잘난 멋에 사는 게 인생이라 노래 부르며 사는 존재들 속에서 살기가 어려워 내 눈도 너처럼 놀란 눈으로 멍청할 때가 있단다. 너는 눈이라도 크게 뜰 수 있지? 나는 눈도 크게 못 뜨고 살아서 감은 눈인지 뜬 눈인지 모른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네 친구 고라니도 좋아한다. 너희들이 우리 배추밭에 와서 배추 뜯어 먹고 까만 방콕 같은 똥 몇 개 남기고 간 걸 보면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다. 함께 먹고 살려고 내가 여유롭게 배추 모를 심는다. 우리 아내는 너희들이 다녀가면 난리를 친다. "얘네들 또 왔다 갔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요. 울타리를 치자니까요?" 그래도 나는 너희 편이다. "함께 먹고 사는 겨!"라고 답하고 만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이 있다. 이른 봄에 산속 계곡 양지바른 곳에 가서 내가 너의 귀를 만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노루귀' 라는 풀이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 아마 너도 보았을 거야. 이름이 노루이고 너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노루귀라고 부르는가 봐. 아무리 바라봐도 너의 귀를 닮지 않아서 노루귀를 만나러 학하리 빈계산 지나 금수산 계곡을 찾아가지. 키는 작지만 긴 꽃대 끝에 매달린 꽃봉오리가 너의 귀를 닮은 모양이었어. 그리고 꽃이 피었을 때 꽃잎을 자세히 살펴보니 너의 귀를 빼닮았어. 꽃은 흰색으로 피는 것도 있고 분홍색, 하늘색으로 피는 것도 있어. 이른 봄이면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이 노루귀꽃을 찾으러 다니고 있어. 긴 꽃대에는 하얀 털이 나 있는데 얼마나 보드라운지 몰라, 꼭 너의 털처럼 말이야. 햇빛이 꽃대에 닿으면 하얗게 빛나며 골바람에 흔들리는 노루귀 꽃대가 지금도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어.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키가 큰 나무숲 아래 작은 나무숲이 있고 그 아래 풀숲이 있다. 숲속 작은 골짜기 풀숲 아래 키 작은 노루귀가 봄을 열고 있다. 숲은 작은 계곡에 물을 흘려 강의 발원이 되어 바다에 닿아있다. 봄꽃은 노루귀만 있는 게 아니다. 설 중에 눈을 열고 솟아오르는 복수초도 있고 개불알꽃 제비꽃이 피면 복슬복슬 버들강아지 흔들거리고 산동백 노랗게 웃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숲속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계곡마다 풀숲이 기지개를 켜면 산새들 노랫소리 청량하고 짐승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랑놀이 즐거운 계절이 오고 있다. 숲을 지키는 나무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으며 자리를 옮겨 앉지도 않는다. 산새들 노래하는 숲에서 노는 짐승들은 숲을 떠나지 않으며 함께 숲을 지킨다. 어울림의 조화를 이어가는 자연에서 사람이 예외일 수는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거만함으로 숲에 들지 말아야 한다.
자주 숲에 들어 숲속 식구들의 표정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들로부터 편을 가르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의지를 익혀야 한다.
텔레비전 뉴스가 시끄럽고 무섭다. 자연에 기생하며 사는 인간들의 행태가 실망스럽다. 패를 나누어 싸우는 전쟁이 그렇고 하늘을 뚫고 오르는 미사일이 무섭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자행되는 세상이 인류문명의 종착지인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생각이 통하지 않고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사회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며, 자유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되 함께 편안한 평화로운 세상이어야 한다. 정의는 법이 아닌 양심을 지키는 삶이다. 자연은 어머니처럼 사람을 품에 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삼백육십오일 책장을 넘기며 어리석음을 깨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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