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코로나 탓도 있고 개학을 앞둔 겨울방학 기간이라 한적한 목원대학교 교정을 찾아 걸었다. 뜻밖에도 낯선 금석문金石文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미운 오리 새끼처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 없었는지 빛바랜 모습으로 서 있다.
究天人之際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궁구하고 通古今之變 지난 일과 지금 일의 변화를 통달해서 成一家之言 독자적인 경지의 글을 이루다(필자가 번역함).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報任安書> 중에서 채록한 글이라고 하며 2011. 7월 비석을 세웠다고 적혀있다. 원제는 <報任小卿書>로 사마천이 사형을 기다리는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자기가 궁형을 당한 치욕을 견디면서도 <사기>를 쓰려고 했던 절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이다. 윗글은 편지의 끝부분에 나온다.
사마천이 누구인가. 그는 한 무제 때 흉노족에 투항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죽기보다 더 큰 형벌인 궁형宮刑을 택했다. 그 당시 궁형을 받으면 치욕감과 수치심으로 대부분 자살한다. 그가 수치를 무릅쓰고도 끝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엄청난 시련과 질곡을 견뎌내고 마침내 <사기>라는 위대한 책을 인류의 지성사에 헌정했다.
대학이란 대인지학大人之學의 줄임말이며 대학교는 맑고 밝은 리더가 되기 위해 배우는 곳이다. 지금의 대학은 뜻을 키우고 학문을 연구하는 본연의 기능이 많이 퇴색되고 직업인으로 사회에 나아가기 위한 공부하는 곳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청년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을 열기보다 사회적 삶의 생존 조건에 예속당한 채 점점 위축되고 있다. 참으로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숨 크게 쉬고 호연지기를 품기에는 사방의 벽이 너무 높은 듯하다. 그렇다고 예정된 길을 벗어나면 뒤처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조건에 결박당한 채 나는 이만큼이라고 획을 그어서는 안 된다. 젊음의 장점은 벽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방에 모죽毛竹이란 대나무가 있다. 5년 동안 거의 크지 않아도 그동안 뿌리는 땅속으로 5m, 주변 10m까지 키워나간다. 그러다 6년째가 되는 우기에 하루에 1.8m, 반 달 만에 20m 이상 훌쩍 자란다고 한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일 터.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일수록 막막한 현실에서 때를 기다리며 외로이 자기를 갈고닦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디 청년들만 그렇겠는가. 백세시대다, 나이를 불문하고 세상은 끊임없이 배움을 요구한다. 세상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온갖 첨단기기로 스마트하게 변해간다고 하지만 개인은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왜소하고 나약한 존재로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길을 찾아 고독한 항해자가 되는 꿈을 꾸어보면 어떨까. 인생에 늦은 시간이란 건 없다. 자기가 선택한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인간은 길 위의 존재, 남들이 선뜻 가려고 하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나를 둘러싼 것들의 신비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은 또 다른 인생의 맛이다. 금석문은 지금의 언어로 속삭인다. 너는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그 방면의 일가를 이루기 위해 축척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는가.
이천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글을 만났다. 인생의 저녁 무렵에 접어든 나이라고 안일함과 무덤덤함에 물들어 가는 나를 깨우는 문장이었다. 우연한 장소에서 뜻밖에 마주친 금석문은 나에게 풍경처럼 다가와서 폐부를 찌르는 돌침(石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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