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
계절적으로 가장 양기가 가득하고 활동이 왕성한 것은 여름이지만, 생명력이 가장 넘치는 계절은 봄이다. 봄에는 인체의 모든 기능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시동을 거는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활동량 증가에 의한 체력 저하와 다양한 자극(꽃가루, 바이러스 등)에 대한 면역력 문제이다. 체력 저하는 춘곤증이나 만성피로, 식욕부진, 코피 등을 유발할 수 있고, 면역력 문제는 감기, 비염 등의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건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들이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종종 코피가 나거나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혈이 부족하거나 막혀서 순환이 안 되는 것으로 보고, 기운을 북돋고 순환을 도와주는 방법으로 체력과 면역력을 키웠다. 예를 들어, 기가 허하면 기운을 더해주는 보중익기탕을, 혈이 허하면 혈액과 영양분의 대사를 도와주는 사물탕을, 기혈의 순환이 안 되는 경우에는 순환을 돕는 사역산이나 당귀작약산을 처방하여 인체의 생리적 기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체력 증진과 면역력 강화를 유도하였다. 한의학에서는 면역력을 특정 항원을 차단하는 딱딱한 갑옷이 아니라 기혈의 순환을 통해 강화된 정기에 의한 생리적 방어막으로 여기는 것이다(正氣存內 邪不可干).
현대인들에게 기허나 혈허와 같은 한의학적 개념은 너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의계도 그러한 의문에 충분히 공감하고, 실질적인 작용기전과 임상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기허 치료 처방인 보중익기탕의 경우 만성피로증후군, 아토피 피부염(기허형), 비염, 치매, 요실금, 현훈(어지러움)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치료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들이 수행됐다. 또한, 보중익기탕이 운동선수의 에너지 대사 및 근지구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도 수행됐다. 최근에는 보중익기탕의 작용기전이 체내 에너지 항상성(homeostasis)의 주요 조절인자인 AMPK (AMP-activated protein kinase)의 활성화 조절과 관련이 있다는 세포실험 결과도 보고되는 등 한의학적 관리방법의 과학적 기전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개별 처방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들이 중심이 되고 있으나,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축적되면, 현대인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한의학 기반 건강관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이러한 '평소 건강증진 방법'이 한의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생활습관 관리와 건강식품 섭취가 있다. 건강식품, 약차(藥茶), 홈트레이닝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연동되는 건강관리 앱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나의 손목에도 스마트밴드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건강에 좋다는 것들이 넘쳐나면서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너무 많이 먹거나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가려내는 일이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건강기능식품의 경우는 관련 논문을 홍보자료에 크게 노출했는데, 실제 논문을 보니 해당 건강기능식품을 8주간 먹고 마지막 날 해당 식품을 먹기 전후에 차이가 있다는 실험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면 오래 먹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에 문의했더니 해당 글은 사라졌다. 일반 대중들이 논문까지 확인하면서 건강관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 맞는 봄철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한의사든 의사든 반드시 전문가에게 상담하여 올바른 방향을 잡고 시작하시기를 권한다. 이영섭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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