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딸아이의 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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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딸아이의 빈방

조한묵 건축사

  • 승인 2022-03-03 16:05
  • 신문게재 2022-03-04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3월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개학 시즌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기분은 남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봄을 맞은 캠퍼스를 한껏 멋을 부린 사복을 입고 자유롭게 누빌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해방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기분을 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3년째 대학의 봄은 우울하기만 하다. 시기적으로 참으로 불행한 아이들이다.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졸업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최근 필자는 서울을 여러 번 다녀왔다. 둘째 딸아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여 자취할 방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 학생이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숙사도 거리 순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대상자를 거른다고 한다. 거기서 밀려 자취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성적순은 여기서도 작동을 하고 있었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까다로운 눈썰미로 딸아이가 안심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적절한 보증금과 월세에 맞춰 고르다 보니 대부분 경사가 급한 산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다가구 또는 다세대 건물들이었다. 낡은 건물에 전문가인 나의 눈이 쉽게 만족을 할 리 없었다. 다행히 조카도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하여 두 사람이 같이 지내기로 하였기에 그나마 비용 부담은 반으로 줄었는데도 그렇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옥탑 방 한 곳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옥상 공간이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세면대 물을 내려 보니 물이 나오지 않아 바로 발길을 돌렸고, 길가에 바로 접한 반 지하는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새로 도배를 했지만 필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 검은색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주변은 휘황찬란한 빌딩과 아파트들이 즐비했지만 소중한 꿈을 안고 상경한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될 공간들은 열악했다. 몇 년 전에 TV에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의 열악한 환경과 삶을 다룬 내용이 방영된 적이 있다. 그중 한 여학생의 인터뷰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공교롭게도 대전 출신의 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한 지하 단칸방에서 몇 년을 보내다 보니 건강도 많이 나빠지고 졸업은 했지만 취업을 못해 아직도 곰팡이 피어있는 방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보았다. 대전에서 대학생활을 하였으면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잘 다녔을 텐데 후회가 된다고도 하였다. 우리 딸아이도 그런 처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더욱 눈을 부릅뜨고 좋은 환경의 집을 구해주려고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지은 지 몇 년 안 된 다세대 건물에 계약을 하게 되었다. 좀 좁긴 하였지만 둘이 쓰기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4층인데 역시나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도 매우 가팔랐다. 좁은 크기의 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평면 형식이었다. 개강을 며칠 앞두고 딸아이의 짐을 승용차에 싫고 서울로 향했다. 광명에 있는 대형 가구매장에서 가구들을 구입하고 직접 조립하여 방에 세팅을 해주고 딸아이와 작별을 하고 내려왔다. 대전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 앉아 와이프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마음이 허전했던 모양이다. 텅 빈 방을 보고 필자도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이 방은 딸아이가 미래의 꿈을 키우며 책과 씨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졸려도 침대에 쉽게 눕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한 자신과의 싸움을 한 공간 이었을 것이다. 입학 철을 맞아 비슷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엄마 아빠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살게 하지 못하는 죄책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이 아이들이 자기가 선택한 길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빛을 발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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