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언어'의 정원에서 만난 대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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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올랑 새책] '언어'의 정원에서 만난 대가의 세계

시여, 침을 뱉어라, 그들의 말 혹은 침묵

  • 승인 2022-02-27 17:19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그들의
▲게티이미지뱅크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어가 곧 그 사람의 '혼'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간극의 뜻과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의 깊이를 하나의 문장으로도 한권의 책으로도 풀어내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의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회문제를 글로 환기한 대가의 작품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수많은 시인에게 정초석과 같은 존재인 김수영의 시론집 '시여, 침을 뱉어라'(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민음사 펴냄, 300쪽)가 독창적 시론과 초월적 언어관으로 한국 문학의 상징인 김수영의 시학을 분석하고 있다면 '그들의 말 혹은 침묵'(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민음사 펴냄, 204쪽)은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에르노의 초기 장편 소설이다.

가장 실험적인 글쓰기와 문체를 통해 대중과 시대 의식을 공유한 작가들의 치열한 세계관이 녹아 있다.



▲시여, 침을 뱉어라=김수영이 쓴 시론과 문학론에 해당하는 산문만을 엮은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이 문학에 남긴 사유를 한눈에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시의 뉴 프론티어', '시인의 정신은 미지(未知)'로 정의했던 김수영은 세계 힘들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의 시인으로 시를 통해 '자유'와 '뿌리'에 대한 지성인의 치열한 고민을 보여줬다.

혼돈의 역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나에게 박는 거대한 뿌리'를 상상했던 김수영은 '혼란'을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 정의하며 자신이 마주한 혼란스러운 시대와 상황에 대해 기꺼이 고민한다. 역사 흔적이 몸에 남겨진 세계인이자, 외로운 약소국의 국민이었던 시인의 사유의 결과물은 그래서 통렬하고 처연하다.

일상적 소재에서 시를 발견해 내는 탁월한 독창성으로 한국 현대시의 출발로 불리는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의 철학과 소시민으로서의 인간 김수영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말 그대로 말, 그리고 말과 말 사이의 행간, 말 이후의 침묵 등 다양한 언어적 기법을 통해 가장 실험적인 글쓰기와 문체를 선보였던 에르노의 초기작이다.

여자와 노동자 계급 출신, 성과 계급이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떤 역학 관계가 있고, 표리부동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그래서 잔인할 정도의 '사회학적 자기 성찰', '문학적 사회과학'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했다.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고, 동자 계급에 속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의 언어로 글을 쓴다'고 자신의 자아를 밝혀온 작가는 책에서도 작품을 화자를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소녀 '안'의 딱 시기의 은어와 비속어, 준말 등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동자계급의 부모로부터 문학적이고 교양있는 자산(언어)을 물려받지 못한 주인공이 사회 체제 안에서 휘청이며 깨닫는 비루한 현실은 국경은 넘어 모두에게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자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자아의 수준을 보여주는 '언어'를 통한 고민이 파격적이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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