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철 변호사 |
우리도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은연중에 자녀에게 비교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그 시작은 아마도 아이를 달래기 위한 사소한 비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뚝, 울음 그쳐. 옆집 친구는 주사맞을 때 안 울었다던데?", "형은 잘했는데, 우리 동생도 잘할 수 있지?" 등 이 정도의 비교는 아이에게 비교대상을 떠올리고 은근한 경쟁심을 가지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비교가 나중에는 부모의 화풀이 수단이 되거나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고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폭력적인 도구로 변하기 쉽다. "옆집 누구는 이번에 백점 맞았다고 하더라. 너는 왜 그래?", "남들은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하는 거야?" 등 보통 이런 말을 할 때 부모는 언성이 높아지고 표정도 표독스럽게 변하게 된다. 도대체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엄친아, 엄친딸과 비교되고 있는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반감만 높아질 뿐이다.
비교는 곧 질투와 연결되기도 한다. 비교 또는 비교의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 인간이 로봇처럼 모두 똑같이 만들어졌다면 비교라는 개념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는 가인의 살인은 동생 아벨에 대한 비교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신이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사를 받은 것에 대한 원망이 아벨에 대한 질투로 바뀌었고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 최초의 인간 아담의 타락도 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비교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비교(比較)는 견주다는 뜻의 두 글자가 합쳐진 말로서 국어사전에서는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로 풀이된다. 영어 compare도 분석하면 '같은 것인지 보기 위해 함께 두다'라는 어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할 때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 비교하는 일이다. 자세히 따지고 살펴보며 비교해야 올바른 판단의 근거가 생긴다. 얼마 전 끝난 동계올림픽을 보더라도 건전한 경쟁이 있을 때 더 페이스가 좋고 결국 기록도 단축되는 사례를 흔히 보게 된다. 비교할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고 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과도한 만족감으로 왜곡된 우월감을 갖게 되거나 반대로 지나친 열등감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보다 잘하려 하고 돋보이려고 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자녀나 제자들에게 남과 경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다그치는 것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을 생략하고 화려한 결과만 쫓다 보면, 범죄에 연결되기 십상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한탕을 노리다가 사기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의 아이디어나 노력을 훔치는 행위도 종종 일어난다.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패륜범죄들을 결코 옹호할 수는 없으나,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범죄자들 역시 오랜 시간 부모로부터 주입된 비교의식의 피해자이면서 학대의 피해자인 경우가 있어 더 가슴 아프다.
'누구나 태어날 때 자기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만이 잘할 수 있고 어울리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기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잘 성찰해야 한다. 남과 비교해서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즐거운 것을 찾아야 한다. 비교하되 왜곡하지 말고, 비교하되 비난하는 일을 멈추자.
/법무법인 유앤아이 신동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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