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의 세상읽기]“그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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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란의 세상읽기]“그래, 괜찮아"

  • 승인 2022-02-23 15:12
  • 수정 2022-02-23 15:16
  • 신문게재 2022-02-24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황미란 칼럼사진
▶한 나무꾼이 산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궁핍한 살림에 양식마저 똑 떨어진 겨울. 칡뿌리라도 캐먹을 심산으로 산에 올랐죠. 찬바람에 풀뿌리도 모두 숨어버린 산속, 한참동안 이곳 저곳 살핀 끝에 칡덩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허라, 넝쿨이 제법 굵은 것이 뿌리도 실하겠구나" 넝쿨을 힘껏 잡아당겼죠. 횡재의 기쁨도 잠시 "어이쿠야!" 곧 외마디 비명을 내뱉습니다. 사실 그가 손에 잡은 것은 살 오른 칡덩굴이 아니라 검불에 웅크리고 있던 늙은 호랑이 꼬리였죠. 나무꾼은 혼비백산 나무 위로 몸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성이 날 데로 난 호랑이는 나무를 마구 흔들어댔고 힘이 딸린 사내는 결국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하필 호랑이 등이라니….

이번에는 늙은 호랑이가 깜짝 놀랐습니다. 춥고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난데없는 놈의 괴롭힘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죠. 거머리처럼 등에 바짝 달라붙은 불청객을 떼 내려 온몸을 흔들어 댔습니다. 하지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지 않으려는 놈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악스런 손아귀에 공격당한 목과 겨드랑이는 털이 다 뽑혀나갈 듯 고통스러웠고, 숨통까지 조여왔습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사력을 다해 산비탈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놈은 더 세게 목덜미를 움켜잡았습니다.

봄 농사 준비를 위해 밭에 거름을 뿌리던 농부가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만하며 하는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 빈둥빈둥 놀면서 호랑이까지 타고 다니는 구나" 투덜대며 불평을 쏟아냈죠. 농부의 눈에는 죽기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신선놀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흙먼지 뒤집어쓴 채 밭을 가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OECD 37개국중 35위로 최하위라고 합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국민임에도 스스로 느끼는 체감 행복도는 충격적일 정도로 낮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요?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업체가 17개 선진국(한국,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프랑스, 그리스, 독일, 캐나다, 싱가포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일본, 영국, 미국, 스페인, 대만)의 성인남녀 1만 9000명을 대상으로 물었습니다. 그 결과가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는 삶을 의미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가족이 1순위에 오르지 못한 나라는 단 3곳, 한국과 스페인, 대만뿐이었죠.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놀랍게도 한국인의 답은 '물질적인 풍요(19%)'였습니다. 건강은 17%, 가족은 16%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사회'에서 '물질'을 제 1의 가치로 삼는 것이 마냥 나무랄 일만은 아니지요. 좁은 취업문에 천정부지 치솟은 집값과 물가, 끊어져 버린 계층이동 사다리, SNS에 만연한 경제력 과시…. 생각만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씁쓸한 현실. 그래도 호흡을 가다듬어봅니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스칩니다. "그래, 제일 큰 문제는 그놈의 비교병이야!"

"하필 왜 나만", "저 사람은 운도 억세게 좋아"….살다보니 작은 일에도 남과 비교하며 습관처럼 불만을 쏟아냅니다. 내가 가진 것은 왜 그리도 보잘 것 없는지, 다른 사람 손에 있는 것은 왜 그렇게 커 보이는지. 이미 마음을 지배한 부러움과 피해의식은 잘 나가는 그들의 숨은 노력이나 애환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과 아량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또 비교 당하는 삶. 그러면 그럴수록 더 고달프고 불행해지는 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고질병이죠.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이라도 이불킥 시전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주문을 걸어봅니다. "괜찮아, 남보다 조금 부족하면 어때", "괜찮아, 남보다 조금 늦으면 어때", "괜찮아, 그래 괜찮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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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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