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산이 나를 부른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문예공론]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산이 나를 부른다

이현경 / 시인

  • 승인 2022-02-21 14:1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전철을 타고 가는데 등산객 몇 사람이 탔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지난 세월이 밀려오며 대둔산의 구름다리가 생각이 난다. 아마도 40년 전쯤일 것이다. 그 시절에는 별다른 장비 없이 청바지와 면티만 입고 산을 오르던 때였다. 가볍게 언니들을 따라나섰던 그 산이 대둔산이었다. 구름다리에 엉겁결에 내 몸을 얹기는 했는데 덜덜거리는 발이 도무지 말을 안 들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출렁출렁,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한 숲이 아찔했다. 혹여 떨어지면 어쩌나 겁이 나서 굵은 줄에 매달려 눈물만 죽죽 흘렸다. 그때 마침 구름다리를 건너오던 등산객이 내 모습을 보고는 내 팔을 꽉 붙들고 괜찮다고 안정을 시킨 다음 조심스럽게 한 발 두 발 다리를 건너왔던 기막힌 사연이 있다. 그 뒤로부터는 산에는 근처에도 안 갔다.

그런 후 어느 날, 동네 젊은 엄마들이 북한산을 오르자고 나를 자꾸 부추겨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또 따라나섰다. 가쁜 숨을 헉헉 몰아쉬며 땀이 범벅이 되어서 올라가는데 산을 내려오는 사람이 나보고 한마디 한다.

"그렇게 힘든데 산에는 왜 올라옵니까?"

하고 핀잔을 줬다. 괜히 부끄러웠다. 산행한 뒤로 종아리에 알이 배겨서 다리가 풀리는데 일주일 동안 애를 먹었다. 그 뒤로 절대 산에는 안 간다고 맹세를 했다.



어느 날 문화센터에서 컴퓨터 강좌가 시작되어갔는데 그곳에서 초등학교 선배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가 시작되었다. 듣다 보니 그 언니는 등산도 잘하고 빙벽, 바위도 잘 타는 산의 전문가였다. 나보고 산에 함께 다니자고 한다. 이를 어쩌나……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언니, 나는 산을 엄청 싫어해요."

"나만 따라오면 돼. 다음 주에 도봉산에 가자. 우리 엄마들 산행팀이 있어. 다들 좋아할 거야."

이런 또 엮여서 도봉산을 오른다. 이제 선배 언니를 따라서 자주 산행을 하게 됐다. 등산의 기초부터 배우면 더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욕심이 생겼다. 때마침 모 신문사에서 대문짝만하게 나온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트래킹학교였다. 망설임 없이 접수를 하고 찾아 떠난 날, 차 안에서부터 강의 이론이 시작되고 계룡산에 도착해서는 직접 체험을 하며 배웠다.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스틱 잡는 법, 등산 가방 매는 법과 끈 조절법, 등산화 고르는 법과 끈 묶는 법, 등산 가방에 꼭 있어야 할 것들, 요긴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 등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배움을 얻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로 우리나라 산을 참 많이 다녔다.

지금도 가보고 싶은 산은 대관령 선자령과 덕유산 눈꽃 산이다. 선자령에서 그만 길을 잃어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길을 찾아 헤매다가 눈에서 벌러덩벌러덩 미끄러지던 일, 덕유산에서 설산의 눈꽃의 장관을 봤던 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코로나 확산으로 잠시 중단된 산행이지만, 좋은 날이 돌아오면 내 마음 받아주는 곳, 나를 부르는 산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현경/ 시인

이현경 시인
이현경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금산 무예인들, '2024 인삼의 날' 태권도와 함께 세계로!
  4. 학하초 확장이전 설계마치고 착공 왜 못하나… 대전시-교육청-시행자 간 이견
  5.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1.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2.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3.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4.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5.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