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인생역정 하나하나가 기억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역사나 경전을 기술함에는 술이부작(述而不作)해야 한다. 자기생각을 쓰거나 창작해서는 안 된다. 논어 술이7에 나오는 말(述而不作, 信而好古)이기도 하다. 전하기는 하되 창작하지 말라, 그래야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 기록(記錄)하라는 것이다. 그대로 쓰라는 말이다.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회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창작으로 이루어지면 불편부당해질 뿐만 아니라 끝내는 패망으로 치닫는다.
전기는 그와 다르다. 서술하는 것이다. 과장되거나 작가의 생각이 가미된다. 물론, 뇌문(?文, 조문)·묘비(墓碑)·묘갈(墓碣)·사략(事略)·실기(實記)·행장(行狀) 등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는 모든 방법이 포함된다. 다분히 읽는 사람이 고려되기 때문에 주로 숭고미를 드러내려 애쓴다. 모든 이의 삶이 대상이지만, 아무래도 독자성, 정체성, 역사성 등이 고려된다.
자서전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다. 저자와 화자, 주인공이 동일하다. 아무런 제약도 없지만, 삶의 솔직한 서술이 조건이다. 자기 외의 등장인물과 역사현장이 있기 때문이요, 문학적, 예술적 기능보다 진실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생명체가 자식 통하여 생을 지속시키듯, 기록으로 일종의 영생을 누리려는 것이 자서전이다. 인간만이 갖는 정신적 산물이요, 욕망이기도하다. 삶을 정리해보는 방식이기도 하며, 타인과 만나는 소통수단이기도 하다. 고백록, 회고록, 회상록 등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더욱 다양한 방식과 형식이 등장한다. 자신의 이야기 외에, 삶의 지혜와 선악, 자신의 주변인물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구가 많아졌을까? 주변에 자서전 쓰기 교실도 꽤 눈에 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 저작물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을 보다 깊이 있게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드물게 전문 분야의 연구물도 있고, 창작물도 있다. 대부분 자서전 형식을 빌린다. 전문 저술가나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늬만 자서전이고 작가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주인공이 구술하고 정리해준 자료를 작가가 정리하고 서술한다. 본인이 자서전이라 하니, '전기식 자서전'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허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센세이션 하거나 기억에 남는 선거철 자서전도 많이 있다. 낯간지럽지만, 자신을 미화해야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거짓말은 하지말자. 진솔하지 않으면 감동도 재미도 없다.
선거철에 난무하는 거짓이 또 있다. 자서전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 또는 속임수로 상대를 중상모략(中傷謀略)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로 호도하기도 한다. 대놓고 하는 흑색선전(黑色宣傳) 이다. 승자도 패자도 상처만 남는다. 구성원의 낙심은 더 크다. 선거의 가장 큰 병폐가 아닌가 한다. 선출직은 그 크기를 떠나, 해당 집단의 대표자가 된다. 조직 수장이 거짓말쟁이이면 잘 될 일이 어디 있으랴?
자서전,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다. 생을 정리하며 마지막에 한번만 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은 인생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자서전이 필요치 않을까? 돌아봐야 남은 반을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쓰는 것이 남을 위한 것이라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쓰는 자서전은 자신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나를 위한 자서전을 써보자. 단, 진솔해야 한다. 거기에 행복한 미래가 있지 않을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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