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훈수는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입에 달고 산다.
종알종알~ 힘듦을 토로하면 늘 따라붙는 말이다.
문제에 문제를 끙끙 달고 사는 막내딸이 못 미더워 앞을 막아서는 말 "그러니까 나한테 물어봤어야지……."
안타까움에 가슴 아파하며 잠 못 자는 울 엄마. 그래도 친구 같고, 언니 같아서 말 안 해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심란하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게 엄마다.
입만 봐도 밥은 먹었는지?
급똥이 마려운지?
잠 때가 왔는지?
어디를 갈 건지?
거짓말인지?
자기 뱃속에 열 달을 품었다가 내놔서인지 본능적으로 귀신같이 알아챈다.
필자의 엄마 진순덕 여사(87) |
내가 힘들어 할 땐 자신이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해서 말 못 하고,
내가 외로워 할 땐 함께 해줄 수가 없어서 말 못 하고,
내가 배고플 땐 밥 챙겨주느라 정신 없어 말 못 하고,
내가 밥 먹을 땐 밥 한 숟갈 더 먹이려 잠깐 한눈 판 사이 꾹꾹 누른 고봉밥을 쌓고는 눈치챌까봐 말 못 하고
내가 잠들 땐 깰까 봐 입을 틀어막고 새어 나오는 기침을 주체 못 해 사리 걸린 것처럼 토해내느라 말 못 하고,
내가 아플 땐 여기저기 주무르며 걱정 반, 의사 반이 되어 자기 탓이라고 근심이 서려 말 못 하고,
내가 어디 가면 또 잔소리 한다고 뭐라고 할까 봐 말 못 하고,
평생을 자식 눈치만 보느라 전전긍긍 할 말도 다 못 하고
담배 인생 40년을 연기로 날려 왔던 무거운 삶을 산 엄마.
가슴에 한이 뫼비우스 띠처럼 무한대로 얽혀 있어 풀 수 없는 한이 많은 엄마다.
죽어야 끝난다며 땅 끝까지 가라앉는 한숨을 내쉬다 늙어버린 백발이 성성한 울 엄마.
시간이 약이라는 명약도 우리 엄마는 무용지물이다. 더 겹겹이 쌓여서 밤새도록 이집 저집을 떠도느라 잠도 한숨 못 자고.....
눈꺼풀은 십 리는 꺼지고, 걱정은 백 리고, 한은 천 리다.
4년 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 살아난 엄마에게 다짐했던 맹세는 무색 하리만치 지키지 못할 허세로만 남은지 어언 일 년째. 가진 게 없을 때도 앞뒤 재지 않고 전심을 다했건만 오히려 먹고 살만하니 더 움켜쥐느라 마음만 앞서고 그 무엇도 호쾌하게 나설 수가 없는 불효자인 막내 딸.
엄마는 점점 야위어가고 늙어만 가는데…….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 마음만 급해질 뿐이다.
핑계만 늘어가는 딸이 못내 마음에 걸려 "한번 왔다 가라" 는 말도 못 하고…….
김미영/ 수필가
김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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