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변호사 |
우리나라의 연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는 800여 명에 이른다. 이와 같은 사고 사망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심각한 수치다. 매일 2명이 넘는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감추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러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자 제정된 법이다. 사업주 등 경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액의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기업들로 하여금 산업재해를 예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실한 입법목적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과정부터 지금까지 많은 논란과 반발이 뒤따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법률규정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가가 '어떻게 법을 지켜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충분한 인력과 법률지원 체계를 갖춘 대기업의 상황은 그래도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건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혼란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대재해법, 대기업은 20억 컨설팅… 중소기업은 법 해석도 못 해'라는 한 언론기사의 타이틀은 중소기업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하자면 사업주 등이 '능동적으로'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치의 내용은 산업재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라는 것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현장마다 각각의 특성을 고려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근로자들의 의견을 주기적으로 들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파악된 위험 요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예산이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 산업현장을 규율하는 법령에서 요구하는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보다 더 간략히 하자면 '기업 운영의 최우선 중점을 안전에 두라'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간 안전이라는 가치를 인력과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에 뒤처지는 후순위의 문제로 평가해 왔다면 이제는 기업의 사활을 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물론 수없이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 모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그러한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사업주가 나서서 경각심과 책임의식을 갖고 사고를 조금이라도 더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취지에 더 가깝다. 이렇게 크고 간략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걱정은 법의 운용 방식이다. 산업재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일단 의무 불이행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려는 수사가 이뤄져서는 안된다.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라지만 이처럼 '일단 기소할 테니 알아서 무죄를 입증해 보라'는 식의 수사와 기소가 이어질 경우 설령 무죄 선고가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산업계 전반에 감당하기 어려운 법률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안전보건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어차피 처벌될 텐데 그저 기도나 하는 게 낫다'고 느끼게 된다면 오히려 기업의 능동적인 노력을 유도하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간절한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산업현장에서의 비극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재해 예방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도 기업들의 이해를 돕고 함께 재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또한, 재해예방을 위한 기업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사법절차 역시 어렵게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착을 위해 필수적일 것이다.
/법무법인 윈 신기용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