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명대사 찾기-13] '특권으로 변질된 노무현 정신', 변호인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심쿵 명대사 찾기-13] '특권으로 변질된 노무현 정신', 변호인

심상협 /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2-12 11:1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변호인
영화 '변호인' 포스터
'추문,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진 한국 대통령 선거'

10일 워싱턴 포스트에서 바라본 한국 대통령 선거의 모습이다. 역대 최악의 진흙탕 선거로 지탄 받고 있는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하면서까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자연스레 2013년말 개봉해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영화 '변호인(2013년)'이 떠오른다.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판단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공안경찰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의 증언에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의 격정 어린 토로다. 송우석 변호사는 영화 마지막 자막에서 밝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을 영화화한 인물. 영화의 설정은 각색된 허구지만 논픽션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99명의 변호인이 호명돼 일어서며, '이날 법정에는 부산지역 변호사 142명 중 99명이 출석했다'는 자막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 부산 법정이 아니라 1974년 민청학련 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하다 자신조차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강신옥 변호사 재판정 모습이었다. 강신옥 변호사의 군법회의 재판에는 100명의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나선다. 이후 13년이 지난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법원은 강신옥 변호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이 곧 국가인 나라'에 살고 있는가? 국민이 곧 국가인 나라라면 엄밀히 법철학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1987년 개헌 헌법은 통치권에 우선하는 법체계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법체계가 모델로 하고 있는 서구의 헌법에 대한 시각은 '통치권'을 중심으로 보느냐, 아니면 '기본권'을 중심으로 보느냐 하는 두 가지 입장과 시각으로 나뉘어 왔다. 독일의 법체계를 예로 들자면 흔히 칼슈미츠 의 '결단주의'의 입장은 국가의 통치권에 우선하여 헌법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반면 루돌프 스멘트의 '동화적 통합이론'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을 바탕으로 사회나 국가를 계약관계로 보는 존로크와 루소 이후의 계약론에 입각하여 헌법을 바라보며 인간의 기본권에 우선한다.

독일도 바이마르 헌법 이후 '통치권' 중심의 법체계였으나 오늘날 독일 헌법 제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어서는 안되며, 국가는 이 불가침의 원칙을 확인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라 명시하고 있다.

그저 돈 버는 변호사이던 송우석 변호사가 학생운동을 하던 돼지국밥집 아들 진우를 나무라자 진우가 항변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계란 아무리 던져봐라. 바위가 부서지나?"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은 기라고, 계란은 그것을 깨고 일어나 바위를 넘는다……."

독재체제로 굳어진 국가는 바위이고, 계란은 살아 역동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향한 움직임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다. 1987년 제정 헌법은 알다시피 밀실에서 여야 몇 명의 정치인이 합의해 신문 공고 절차를 거친 헌법이다. 국민 참여나 합의의 절차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로 이른바 '87레짐 청산'을 제시하곤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당 후보가 '4년중제 개헌'을 내세우며 개헌을 공론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국민 기본권'에 우선하는 개헌이 근본적으로 '87레짐'을 청산하는 개헌이 아닌가 묻고 싶다. 언제까지 우리나라는 위로부터의 통치권에만 주목할 것인가?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전날 후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만 20년이 지난 오늘 대선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변함 없이 오늘의 정치가 썩어 있고 국민이 바꿀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권위주의 청산, 또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노력했던 '노무현 정신'마저 더럽히는 오늘 우리 정치가 아닌가 한탄스럽다. 나아가 통치권에만 주목하다가는 국민이 위임한 권리를 '기득권', 또는 '특권'으로 변질시키는 패악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심상협 / 문학평론가

심상협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