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보다 긴 것이 있다. 호주에 있는 토끼 울타리다. 토끼 울타리가 만리장성보다 더 길어진 사연은 실로 웃프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이나 신대륙 발견이 활발하던 대항해 시대(大航海時代) 당시,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호주에 도착한 영국 출신 운동선수 토마스 오스틴은 사냥이 취미였다. 그는 영국에서 꿩, 메추라기, 토끼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호주에는 토끼가 없었다.
오스틴은 영국에 사는 조카에게 토끼를 배편으로 보내 달라는 편지를 썼다. 곧 영국으로부터 스물네 마리의 토끼가 호주에 도착했다. 그렇게 호주에 상륙한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했다.
호주인들은 암컷 토끼가 두 개의 자궁(子宮)을 가지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암컷 토끼는 임신 중에도 또다시 임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에 많은 토끼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집에서 사육하던 중 집토끼들이 야생으로 도망치면서 토끼의 수는 100억 마리 이상으로 급증했다. 겨울철에도 춥지 않은 날씨와 토끼들의 강력한 번식력이 상승 작용을 하면서 호주 들판의 풀들을 전부 뜯어 먹었다.
소나 양을 키우는 목장에까지 침입해서 가축의 사료까지 몽땅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제2의 메뚜기떼들이었다. 호주 국민들의 공포감이 절정에 달했다.
고심하던 호주 정부는 점액종(粘液腫) 바이러스를 퍼트리면서 약 6억 마리의 토끼 개체 수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토끼를 근절시킬 수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에 이어 설상가상 오미크론 '전쟁'까지 겪고 있다. 그 과정이 실로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호주의 토끼 울타리처럼 사람을 격리하여 청정지역이랍시고 그 안에 들어가 강제로 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민들은 이 험난하고 지겨운 공포의 시절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슬기와 지혜로 헤쳐나가야 한다. 토끼는 강력한 점액종 바이러스 살포에서도 살아났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보다 훨씬 강하다.
다만 관건은 정부의 방역 대책이 포풍착영(捕風捉影)으로 나타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든다는 뜻으로, 믿음직하지 않고 허황한 언행을 이르는 말이다.
정부가 이른바 'K-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칠 때마다 공교롭게 확진자가 증가하는 아이러니 현상이 발생하고 속출했다. 정부가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거꾸로 들썩거리며 배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근저에 '참새의 교훈'이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다가온다.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농촌을 순시하다가 참새를 쏘아보며 "저 참새는 해(害)로운 새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중국인들의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였다.
소중한 곡식을 참새가 쪼아 먹는 것을 본 마오쩌둥이 한마디 하자 중국 공산당은 벌벌 떨었다. 중국인들은 참새 소탕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 등 해충들이 창궐했다.
각종 농작물은 초토화되고 흉년이 들었다. 대약진운동(1958년~1960년) 때 3000만 명의 중국인이 굶어 죽었다. 국가 지도자의 경솔함이 얼마나 많은 후과를 나타내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토끼 울타리와 참새 몰이가 아니라 소중한 우리 존재의 새로운 가치 정립이다. 더욱더 굳건한 건강의 자강불식(自强不息) 의지와 실천이 관건이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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