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이처럼 냉동식품이 하나의 먹거리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콜드체인 시스템의 정착과 급속냉동기술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그중 급속냉동기술은 '동결속도가 빠를수록 해동 후에도 냉동 이전과 유사한 품질을 유지한다'는 특성에서 착안했다. 일반적으로 식품은 영하 1~2도부터 얼기 시작한다. 영하 5도에 이르면 얼음 결정이 가장 많이 생성되는데, 이 구간을 '최대 빙결정 생성대'라 부른다. 그리고 최대 빙결정 생성대를 통과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얼음 결정의 크기가 작고 균일해진다. 기존에 우리가 냉동식품 맛이 떨어진다고 여긴 이유는 얼음 결정의 크기가 큰 탓이다. 보통 생물 세포가 20~30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인 반면 식품의 수분이 얼면서 생겨난 얼음 결정은 100~250μm 정도에 달한다. 커다란 얼음 결정은 세포막을 터뜨리기 쉽다. 이에 식품 효소가 빠져나가면서 맛, 영양, 질감 등이 크게 손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결속도에 따라 얼음 결정의 크기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아직 둘 간의 관계가 이론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았다. 다만, 2016년 네덜란드의 스만 교수가 진행했던 연구가 오늘날 주요한 단서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전산 모의실험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설탕물을 냉동한 결과, 얼음 결정이 만들어지는 양상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우선, 저속 냉동에서는 설탕물이 얼음 결정 사이를 빠져나가는 시간이 충분했다. 따라서 얼음 결정끼리 결합하며 점차 크기가 커지는 모습이 관찰됐다. 한편, 급속 냉동에서는 설탕물 일부 농도가 증가해 어는점이 내려갔다. 이로 인해 얼음 결정의 경계를 둘러싼 준액체층이 새로 형성됐고, 이것이 얼음 결정의 확대를 방지했다.
앞선 경험식에 대한 믿음으로, 작고 균일한 얼음 결정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냉동기술 개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흔히 이용되는 방법은 영하 30~50도의 냉기를 내뿜는 송풍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하 20~50도의 냉매에 담그는 형식은 주로 어패류나 육류 냉동에 사용된다. 액체의 높은 열전도율을 이용하므로 송풍방식보다 동결속도가 2배가량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진공 팩에 포장해야 하므로 고온의 식품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영하 195도의 액체질소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냉동할 수도 있는데, 이는 유지비용과 설치비용이 비싸고 작업자의 위험성도 높다. 비교적 최근에는 압력을 높여서 냉동하는 기술이 논의되고 있다. 고압력을 이용하면 식품의 표면과 내부가 균일하게 냉동되고 얼음 결정의 크기도 더욱 작아진다.
일본 긴키 지방 나라시에는 첨단냉동기술로 유명한 레스토랑, 일명 '프로톤 다이닝(proton dining)'이 있다. 이곳 요리사는 일주일에 한 번 요리를 만들어 일괄 냉동 보관한다. 이후 주문을 받으면 고온의 증기로 재가열해 제공한다.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스시도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하는데, 일반 신선식품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이 식당의 영업 비결은 바로 '첨단 자기 냉동기술'이다. 움직이는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자기력과 전자기파를 조합해 식품 속의 불규칙한 물 분자를 정렬시키는 원리다. 이 경우 음식을 얼리더라도 얼음 부피 증가를 최소화해 맛과 식감을 최대한 원래대로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 흔히 보던 냉동식품이 어느덧 고급 식당에까지 진출한 걸 보니 얼음 결정이 이뤄낸 변화가 새삼 신비롭다. 작고 정렬된 얼음을 만들기 위한 첨단 과학기술은 계속되고 있다. 어린 시절 상상만 했던 냉동수면 기술이 실현돼 불치병 치료, 우주개발에 사용될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르겠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