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觀:볼 관, 命:목숨 명, 昇:오를 승, 進:나아갈 진.
출 처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임종대의 한국 고사성어(韓國의 故事成語)
비 유 : 공적인 일을 소신껏 추진하여 인정받고 성공함으로써 고속 승진하는 경우.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공직을 수행하는 자[공무원]를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들은 국민의 수임(受任)자로서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공익(公益)을 추구하고 맡은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공무원은 그에 상응한 보수를 받고 행정처리에 대한 권한도 주어진다.
공무원의 직분을 군주시대에는 관리(官吏)라고 하였고, 민주시대에는 공무원(公務員)이라고 칭하고 있다.
어느 때 어느 나라이건 공무원이 성실(誠實)하고 청렴(淸廉)한 나라는 부강(富强)해져 나라가 안정(安定)되고, 공무원이 부패(腐敗)하고 부정(不正)을 일삼는 나라는 결국 멸망(滅亡)하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당하관(堂下官/정3품 벼슬) 이관명(李觀命. 1661~1733)이 수의어사(繡衣御使/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영남(嶺南)에 내려가 백성들의 실태를 살피고 돌아왔다.
"수의어사(繡衣御使)이관명 알현이오." 옥좌(玉座)에 정좌한 숙종(肅宗)은 용안(龍顔)에 희색이 만연하여 그를 맞았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그래, 백성들을 직접 살펴본 소회(所懷)는 어떠한고?" 상감이 묻자 어사 답하길 "상감마마께서 정사(政事)를 바르게 펴신 덕택에 지방 관리들도 모두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통영(統營)에 있는 섬 하나가 후궁의 땅으로 되어 있사온데, 그곳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공물이 너무 많아 원성이 자자하였기로 감히 아뢰옵니다."
숙종(肅宗)은 후궁(後宮)의 땅이라는 데 크게 노하였다.
"과인이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주었기로서니 그것을 탓하여 감히 나를 비방하다니……!"
숙종이 주먹으로 앞에 놓여 있는 상을 내리치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뢰었다.
"소신이 예전에 경연(經筵/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일)에 참여하였을 때에는 전하(殿下)께서 이러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런데 소신이 외지에 나가 있던 동안에 전하의 성정(性情)이 이처럼 과격해지셨으니 이는 전하께 올바르게 간언(諫言)하는 신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오니 모든 신하들을 파직(罷職)시키옵소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서슴없이 자기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숙종은 시립(侍立)하고 있는 승지(承旨)에게 명하였다."승지는 전교(傳敎)를 쓸 준비를 하라."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副提學/정3품의 벼슬)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 붓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이었다. 주위에 함께 있던 신하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왜 그런 교지(敎旨)를 내리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처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승진을 한 것이다.
숙종이 다시 명했다. "승지는 나의 말을 다 썼는가?"
"예!"
그러자 숙종은 이어서 "그럼 다시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弘文提學/홍문관의 종이품 벼슬)을 제수한다고 쓰라."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만조백관이 웅성거렸다. 숙종은 잇달아 명을 내렸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禮曹參判/예조판서를 보좌하던 종이품 벼슬)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의 관작을 한자리에서 세 번이나 높이어 정경(正卿)으로 삼았다.
"경(卿)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알았소. 하여 경을 예조참판에 제수하는 것이오.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이 고사를 두고 후세사람들은 갑자기 고속 승진하는 것을 관명승진이라 했다.
그는 훗날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요즈음 자고나면 대선(大選)이야기로 언론매체가 차고 넘친다.
조용한 민심들이 대선에 관심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과열경쟁이나 과격한 언행으로 상대후보에게 깊은 상처를 주어 심한 아픔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지지율, 무능, 준비된 후보, 정책, 양심, 도덕, 전과, 부정, 가족, 등이 많이 회자(膾炙)되어 국민들이 오히려 혼란과 분열이 가증되는 듯하다.
이러한 종류로의 검증이나 대중적 이해를 꼽으라면 필자는 '도덕성'과 '양심'을 우선시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도덕성과 참다운 양심이 있으면 신하들이 감히 부정이나 부패와 결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만원(萬圓)을 부정(不正)으로 꿀꺽하면 그 신하들은 마음 놓고 2만 원 정도를 부정(不正)으로 거리낌 없이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고, 다산 선생도 목민심서(牧民心書)곡부(穀簿)에 "윗물이 이미 흐린데 아랫물이 맑기 어렵다(上流旣濁 下流難淸/상류기탁 하류난청)"고 리더의 비도덕성(非道德性)과 비양심(非良心)의 지도력을 지적하고 있다.
리더자가 아는 것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도덕성과 양심만 살아있으면 그 예하 책임 있는 공복자들에게 합리적이고 책임성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조화롭게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옛날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이었던 요. 순(堯. 舜)임금도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임명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하였으므로 태평시대를 이뤘던 것이다.
송서(宋書) 심경지전(沈慶之傳)의 교훈을 새겨보고자 한다.
농사는 응당 남자 머슴에게 물어야 하고, 베 짜는 일을 마땅히 여자 종에게 물어야한다(耕當問奴 織當問婢/경당문노 직당문비) 리더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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