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
영화 대사 대부분이 유행어로 떠오를 정도로 관객들의 폐부를 찌른 명대사도 많았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대사는 "아들아, 너는 역시 계획이 다 있구나"로 시작해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로 이어지는 반지하방 가난한 가장 기택(송강호)의 대사가 아닐까?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야. 인생은 계획대로 안되거든. 계획은 세워봤자 틀어지기만 해. 계획이 없으면 틀어질 일도 없고. 무슨 일이 닥쳐도 아무렇지 않지."
그러나 이 대사와는 반대로 기택의 가족은 무계획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대학 4수생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명문대 학력을 위조해 박 사장(이선균 분)의 큰 딸 다혜(정지소 분)의 과외선생으로 들어간 이후 동생 기정(박소담 분)은 일리노이 주립대 응용미술학과 학생으로 속여 아들 다송(정현준 분)의 미술선생으로, 기택은 박 사장의 운전기사, 그리고 어머니 충숙(장혜진 분)은 입주 가정부가 된다. 기택의 일가가 모두 박 사장 집으로 '기생'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반지하방에 걸린 가훈 '안분지족(安分知足)'과는 정반대로 박사장 가족이 집을 비우자 제집처럼 목욕하고 침대에 뒹굴며 양주 파티까지 벌인다. 종국엔 살인까지 하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기생충(Parasite)'은 몸속에 들어와 살며 영양분을 빼내 성장하고 번식하면서 사람에겐 나쁜 영향을 주는 매우 생물이다. 한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서로 이득을 취하면 '공생(symbiosis)'이고,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경우 '기생충(parasite)'과 '숙주(host)' 관계이다.
한국사회를 비롯해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빈부 격차가 노블리스 오블리쥬와도 같은 도덕률로 공생하기도 하지만 영화 '기생충'처럼 일방적인 기생관계로 비극적인 파국을 내닫기도 한다.
코로나19 2년여 문재인 정부의 방역대책을 바라보면서 초기였던 2년 전 2월 '짜파구리 오찬'의 웃지 못할 장면이 떠올리면 더 불길해진다. 문재인 정부가 'K-방역'으로 자화자찬했던 뒤편에는 2015년과 2018년 2번의 메르스 사태로 혹독한 징계까지 받으면서도 혁신한 국가방역체계가 있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메르스 당시 징계를 받으면서도 헌신했던 공직자였다. '짜파구리 오찬'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방역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 '정부가 수퍼 전파자'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확진자 확산 속에서 정부는 속수무책인 듯하다.
이러한 속수무책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임기 5년 이내에는 결코 할 수 없는 거짓 수사가 느껴졌고,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글과 말의 진실성을 기준으로 보면 장밋빛 선언에 불과한 수사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공허해지는 한 구절만 되새겨 보자.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정은 '내 편은 뭐든지 옳고, 네 편은 전부 그르다'는 식의 '편가르기'와 '내로남불' 식 오만과 독선이었다. 오죽하면 '위기 극복'이 아니라 '위기를 조장'하여 정권에 이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오늘 문재인 정부의 '위기 조장'이 또다시 어떤 선동으로 불거질지 내심 우려가 앞선다. 조만간 대한민국 방역체계는 '무계획 방역'으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징후를 우려하는 지경이 돼버렸다.
심상협 / 문학평론가
심상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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